“리카르도 무티가 저에게 동양 사람 같지 않다고 했어요. 저는 수줍음이 많지만 무대 위에서는 수줍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더 집중하고 과감하게 연기해요. 제 성악 역시 이탈리아 스타일이라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살아 있는 베르디’로 불리는 무티와 한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에요.”
1년 만에 내한하는 세계적인 거장 마에스트로 무티의 ‘베르디 콘서트’ 소식에 그와 협연하는 한국인 소프라노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여지원(37·사진). 국내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성악가다. 3년 전 대구에서 오페라 ‘투란도트’ 무대에 ‘류’ 역으로 섰지만 이번이 사실상 국내 데뷔 무대다. 3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만난 그의 눈에는 신기함과 낯섦이 가득했다. 금의환향한 한 소프라노에게 쏟아지는 언론의 관심에 “이렇게 많은 기자를 마주한 것도 처음”이라며 운을 뗐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늦깎이로 시작한 성악 전공자의 길은 쉽지 않았다. 대학 4년 내내 최선을 다했지만 여전히 재능 없는 학생이던 그가 지난 2005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다들 걱정을 많이 했어요. 실력 있는 아이가 아니니 경험이나 쌓고 오라고 했죠. 가자마자 입학시험에 떨어졌지만 울면서도 계속 재도전했어요. 재능 있는 사람에게는 슬럼프가 있다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저 매일매일 나아질 뿐이니까요.”
마침내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처음 여지원의 재능을 발견한 것은 무티의 아내였다. 콩쿠르에서 여지원을 본 크리스티나 무티는 ‘맥베스’ 오디션을 권했다. 그렇게 마에스트로 무디를 만났다. 여지원은 “아리아 한 곡을 연습해 오라고 해 공부한 후 오디션을 봤다”며 “다음에는 전체 오페라를 공부해 오라고 해 그렇게 했다”며 웃었다. 바로 이 오디션이 201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중 오페라 ‘에르나니’ 무대에 주역으로 세우기 위한 오디션이었다. 이후 여지원은 무티와 수 차례 협연했다. 올해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무대에 오페라 ‘아이다’의 타이틀 롤로 선다. 세계적 클래식 음악축제인 잘츠부르크 축제 무대에 두 번이나 주역으로 서는 것은 국내 소프라노로서는 유례없는 일이다. 그것도 마에스트로 무티와 함께. 게다가 여지원과 더블캐스팅된 소프라노는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안나 네트랩코다.
이번에 선보이는 곡은 총 네 곡. 이번에 여지원의 제안으로 넣은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를 제외하고 ‘나부코’의 서곡 ‘맥베스’ 중 맥베스 부인의 아리아, ‘에르나니’의 아리아 등은 앞서 무티와 수차례 협연한 곡들이다. 여지원은 “한국 무대에 선다는 것이 저에게는 엄청나게 부담스럽고 떨리는 일”이라며 “앞으로도 시간과 기회만 된다면 좀 더 자주 한국 팬들을 만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무티의 지휘로 경기필하모닉이 협연하는 이번 무대는 오는 6일 경기도문화의전당, 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