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은 거들뿐”
만화 ‘슬램덩크’의 명대사를 기억하는가. 초짜 농구선수였던 주인공 강백호가 경기가 끝나기 직전 멋지게 점프 슛을 성공하고 나서 던진 말이다. 다리 사이로 현란하게 드리블을 하며 성큼성큼 뛰어가 한 손을 번쩍 들어 슛을 날리는 것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경기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축구와 야구에 비해 뭔가 여유로움과 스웨그(swag)가 느껴지는 종목이다(필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사견입니다). ‘농구는 사실 기술보다 큰 체격이 8할 아닌가?’ 농구의 1도 모르는 일명 ‘농알못’ 기자는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직접 농구 코트장에서 드리블을 해보기 전까지. 근거없는 자신감에 부풀어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농구 스킬 트레이닝 체험에 임한 기자는 다음 날 숟가락을 못들 정도로 후폭풍을 겪게 되는데…
◇1QT. 농구 코트에 발들이기
“혹시... 해보신 적 있으세요? 진짜 생각하는 것보다 100배 이상은 힘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아직 운동복으로 갈아입지도 않았는데 트레이너가 대뜸 겁부터 주기 시작했다. 2평 남짓한 샤워실에 들어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반질반질하게 닦인 노란 마루 바닥에 거대한 농구 골대 하나가 놓인 약 15평짜리 실내 농구 코트장. 중·고등학생 시절 체육 시간 이후 농구 코트 앞에 서보긴 처음이었다. 성인 농구 스킬 트레이닝 장소여서 그런지 어릴 때 봤던 농구 골대보다 훨씬 크고 더 높아 보였다. 우뚝 솟은 농구 골대 맞은 편엔 댄스 연습실처럼 벽면 전체에 거울이 붙어 있었다. 일반 농구장 모습과는 달리 개인 PT를 받기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모든 운동의 시작인 스트레칭으로 가볍게 몸을 풀고선 농구 코트장에 섰다.
◇2QT. 농알못, 농구공과 친해지기
이날 기자들이 배울 농구 PT 코스는 농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사람들을 위한 생기초 과정으로 크게 ‘드리블-패스-슈팅’ 총 3단계로 진행된다. 참고로 이곳은 기본적으로 농구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개인 과외처럼 스킬 위주로 배우는 곳이기 때문에 필자 같은 농알못 고객은 많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회원들의 성비는 남성이 80%, 여성 20%이며 대부분 퇴근 후 저녁 시간에 방문한다고 한다. 물론 선예약·후방문 시스템이다. 농구 1도 모르는 기자들이 겁도 없이(!) 방문한 관계로 이날은 특별히 원래 트레이닝 과정엔 없던 코스를 진행하게 됐다. 농구공도 볼링공처럼 남녀용 사이즈가 달랐다. 실제로 만져 보니 여성용이 사이즈가 좀 더 작고 가벼웠다.
◇3QT.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 너에게 가고 있어~
“자~ 가볍게 양손 드리블 각각 100개씩 시작하죠.”
정면에 위치한 거울을 보고 승마 자세를 유지하면서 공을 부드럽게 아래로 밀어내듯 받아치는 삼박자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까짓거 식은죽 먹기지’라는 생각으로 공을 바닥으로 치는 순간 공 따로, 손 따로, 몸통 따로 마리오네트처럼 제각각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울에 집중하면 공이 엉뚱한 곳으로 튕겨져나가고 공에 집중하면 자세가 무너지고. 트레이너에게 배운 대로 아무리 쓰다듬고 어루만져보려 해도 자꾸만 손바닥으로 공을 때리다 보니 돌아오는 소리는 ‘통통통’. 묵직한 농구공에서 탱탱볼 소리가 나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농구에서 드리블이 가장 쉬울 줄 알았던 기자의 생각은 그야말로 오산이었다. 드리블 100개를 하는 내내 트레이너의 지적은 계속됐다. “속도 일정하게! 자세 무너지지 말고!! 공을 때리지 말고 아래로 밀듯이!!!” 손바닥이 시뻘게져 따끔따끔하고 양 허벅지가 후들후들 떨려올 때쯤 지옥의 드리블 훈련은 끝이 났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바로 응용 드리블 단계로 넘어갔다. 양다리 사이에 공을 8자 모양으로 왔다 갔다 50개씩 하고 나니 정말 멘탈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기분이었다. 순식간에 30분이 흘렀다.
하지만 고작 첫 단계가 끝났을 뿐. 다음은 두 사람이 패스를 주고 받는다. 그래도 앞서 했던 드리블보다는 백배는 나았다. 물론 공을 던지면서 자꾸만 뒤집어지는 양손은 어쩔 수 없었지만. 모든 운동이 다 그렇듯이 처음에 자세 잡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드리블로 자신감 바닥을 치다가 패스 연습에서 약간이나마 회복한 후 마지막 슈팅 차례가 왔다. 골대로 뛰어가면서 공을 두어번 드리블하고 슛을 쏘면 되는 것이다. 드리블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런지 괜히 긴장됐다. 마치 고등학교 체육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10골 중 7골 이상 넣어야 A를 받는 실기 시험이 떠올랐다. 아니나다를까 골대를 향해 달려가면서 드리블에만 너무 신경을 썼는지 자동차 급브레이크를 밟듯 골대 앞에서 두 다리가 멈춰 섰다. 어정쩡한 위치에서 일단 머리 위로 슛을 던졌는데 얼떨결에 골이 들어갔다. 그렇게 수십번의 슈팅 연습을 했다. 달려가면서 동시에 드리블을 하고 골을 넣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라니.
◇4QT. 멘탈을 드리블하다
농구 스킬트레이닝 기초 과정을 마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말, ‘농구, 쉽게 봤다간 큰 코 다치는 운동일세’다. 평소 한강 공원에서 길거리 농구 시합을 보면 ‘다른 구기 종목에 비해 참 여유(?) 있는 운동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농알못의 참으로 어리석은 시각이었다. 공수전환이 빠른 농구의 특성상 한 치의 여유를 용납하지 않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즉,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할 것 같다.
사실 필자는 농구의 기본 중의 기본인 드리블도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끝나 아쉬움이 컸다. 손, 발, 공 이 세 가지를 정신없이 좇다가 셋 다 놓친 기분이랄까. 실로 오랜만에 몸 따로 머리 따로 유체이탈을 경험한 기분이었다. 평소 사무실에 앉아 키보드 치는데에만 팔 근육을 쓰는 일명 ‘호모체어쿠스형’ 직장인들의 경우 드리블을 칠 때 필자처럼 깨나 고생할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짧고 굵은 스파르타식 수업 방식을 좋아하고 단 기간에 실력 향상을 꿈꾸는 직장인들이라면 추천한다.
/정가람기자·윤상언 인턴기자 garam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