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대표적인 주거시설이며 자산 증식을 위한 주요 투자처로 꼽히기도 한다. 이러한 아파트에 대한 국내 대표 건축가의 의견을 들어봤다.
최고층수 56층의 고급 아파트단지로 알려진 서울 용산구 이촌동 래미안첼리투스를 설계한 김태만(사진)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CDO)는 “우리나라에서 아파트 가격은 주거의 질보다는 지역에 따라 정해지는 편”이라며 “아파트에 대해 공급자인 건설사나 수요자인 주민 모두 일정한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많은 아파트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획일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가 가장 밀집된 지역인 서울에서는 지난 1970~1980년대에 대규모로 공급된 아파트단지들에서 잇따라 재건축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서울시가 도시기본계획에 따라 주거지역 아파트 최고층수를 35층 이하로 제한하자 일각에서는 서울시의 규제가 ‘성냥갑’처럼 획일적인 모습의 아파트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 대표는 건물 높이 대신 도시의 공공성을 높이는 방안에 주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획일적으로 기준을 35층으로 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50층으로 기준을 높이더라도 결국 50층짜리 건물들이 장벽을 이루게 되며 그럴 바에는 차라리 35층으로 정하는 게 낫다는 게 그의 견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울의 주요 입지로 꼽히는 한강변 아파트단지들의 재건축과 관련해 “건물이 붙어 있으면 높이와 관계없이 한강변을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며 “건물군 사이에 충분한 틈을 만들거나 한강변에서 한발 물러나게 해서 사람들이 한강변에 접근할 수 있는 공간과 조망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단순히 오래된 저층 아파트단지를 고층 아파트단지로 바꾸는 차원을 넘어 변화한 도시의 성격에 맞게 새롭게 재구성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폐쇄적인 대규모 단지도 김 대표가 지적하는 국내 아파트단지의 또 다른 문제점이다. 일단 대규모 단지를 지어 놓고 거기에 필요한 상가·어린이집·놀이터 등의 시설을 갖추게 하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시설이 공공과 잘 공유되지 않아 결국 대규모 단지는 ‘도심 속 고립된 섬’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국내 아파트단지가 지향해야 할 사례로 영국 런던의 바비칸센터,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큐브하우스를 꼽았다. 주거 외에도 상업·문화·관광 등 다양한 기능이 어우러져 사람들의 이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이다. 김 대표는 “도시의 대규모 주거시설, 특히 한강변 주거단지들이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은 복합적인 용도와 도심에 열려 있는 구조”라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