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골프 골프일반

이정은, 휠체어 타고 뒷바라지 해주신 아버지…첫 트로피를 당신께

KLPGA 롯데렌터카 오픈 우승

작년 '우승 없는 신인왕'

와이어투와이어로 한 풀어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된 父

장애인용 차로 운전기사 자처

후원사, 우승 선물로 벤츠 증정

이정은이 9일 롯데렌터카 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우승기념 재킷을 입고 트로피에 입 맞추고 있다. /사진제공=KLPGA이정은이 9일 롯데렌터카 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우승기념 재킷을 입고 트로피에 입 맞추고 있다. /사진제공=KLPGA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대회장에는 지난해부터 휠체어를 탄 한 남성이 자주 보인다. 2016년 데뷔한 이정은(21·토니모리)의 아버지 이정호(53)씨다.


덤프트럭 기사로 일하던 이씨는 이정은이 네 살 때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량이 30m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했고 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이정은은 “골프가 잘 안 될 때는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기도 한데 휠체어에 탄 아버지 생각만 하면 정신이 든다. 골프에 집중하고 성적을 내는 게 효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버지 이씨는 장애인용 승합차를 손수 운전하는 수고를 마다 않고 전담기사로 외동딸을 뒷바라지하고 있다. 골프를 시키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고향인 전남 순천에는 부녀를 끔찍이 아끼는 고마운 이웃들이 꽤 많다고 한다. 이들은 십시일반으로 이정은의 선수생활을 돕고 있다. 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2관왕에 오르면서 이정은은 골프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난 연말 KLPGA 시상식에서 아버지 이정호씨, 어머니 주은진씨와 포즈를 취한 이정은. /사진제공=크라우닝지난 연말 KLPGA 시상식에서 아버지 이정호씨, 어머니 주은진씨와 포즈를 취한 이정은. /사진제공=크라우닝



헌신적인 아버지를 둔 덕분인지 이정은은 남들보다 늦은 중학교 3학년 때 골프선수로 진로를 정하고도 지난해 당당히 신인왕에 올랐다. 시즌 내내 모은 상금(약 2억5,000만원)으로는 전세자금을 보태고 아버지에게 전동 휠체어도 선물했다. 이웃들을 위한 조촐한 인사자리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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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성적


9일 제주 롯데스카이힐 골프장(파72)에서 끝난 롯데렌터카 여자오픈. 챔피언 조 경기가 처음이라면서도 시종 담담한 표정으로 타수를 줄여가던 이정은은 마지막 18번홀(파5)을 버디로 마치고 나서야 눈을 찡긋하며 환한 미소를 드러냈다.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겠다”고 소감을 밝히면서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골프를 시킨 후 매일같이 상상해온 가슴 벅찬 장면을 현장이 아닌 TV 중계로 확인했다. 올 시즌부터 이씨는 장애인 탁구에 전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꾸준한 성적으로 신인왕에 올랐지만 우승이 없어 아쉬움이 컸던 이정은은 데뷔 첫 승을 와이어투와이어(전 라운드 내내 선두)로 해냈다. 2위와 4타 차의 압도적인 우승. 시즌 세 번째 대회이자 국내 개막전에서 일찌감치 1승을 챙긴 이정은은 “2승, 3승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회 우승상금은 1억2,000만원. 지난해 한 시즌 동안 모은 상금의 약 절반을 한 번에 손에 넣은 것이다. 이 대회 우승자에게 주는 내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 출전권도 얻었다.

2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 3라운드에 나선 이정은은 전반에 버디만 5개를 몰아쳐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다. 후반 9홀에 들어섰을 때 2위 박성원과의 격차는 이미 5타로 벌어져 있었다. 후반 들어서도 버디 2개에 보기는 1개로 막는 안정적인 경기를 펼친 이정은은 최종합계 18언더파 198타를 적었다. KLPGA 투어 54홀 최소타(20언더파 196타)에 2타 모자란 무서운 질주였다. 2위 박성원은 14언더파, 지난해 신인왕 경쟁자 이소영은 13언더파 3위로 마쳤다.

양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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