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일상의 오브제' 예술과 교감하다

중견작가 윤동천 '일상의' 개인전

노란방의 리본·분노하는 '짱돌' 등

생활서 만나는 사물들 작품으로

윤동천 ‘노란방’ /촬영=권오열, 사진제공=금호미술관윤동천 ‘노란방’ /촬영=권오열, 사진제공=금호미술관


전시장 좌대에 놓인 짱돌의 제목은 ‘분노’다. ‘이것이 바로’라고 명명된 빛나는 금수저가 있는가 하면, 오래 쓴 듯한 헤어롤 2개 옆에는 ‘무제-일상적 오브제’라 적혀있다. 가뜩이나 난해한 현대미술은 흔히 제목이 없거나 있더라도 암호 같은 숫자 조합이 상당수인데 이렇게 제목이 있으니 친절한 편이다. 녹슨 화장실 변기 수위조절용 스테인레스 볼 2개는 ‘서로 기대다’라는 제목으로 맞붙었고, 울통불퉁한 표주박 2개는 ‘포옹’으로 끌어안았다. 제목도 작품의 일부다.

중견작가 윤동천(60·서울대 교수)의 개인전 ‘일상_의(Ordinary)’가 12일 금호미술관 4개층 전관에서 개막한다. 모더니즘 미술의 시대인 1970년대에 추상회화의 감수성을 익혔고 현실 참여를 강조하는 1980년대 민중미술의 시대를 거친 그는 ‘양분된’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고자 일상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1988년 첫 개인전 이래로 그의 예술 전반을 관통하는 ‘일상’에 대해 금호미술관 측은 “부조리한 사회와 엘리트주의적 예술을 뒤흔드는 중요한 요소이자 하나의 대안”이라고 설명한다.

금호미술관 1층에 전시된 윤동천의 ‘위대한 퍼포먼스-촛불시위’ 연작금호미술관 1층에 전시된 윤동천의 ‘위대한 퍼포먼스-촛불시위’ 연작


1층 전시장의 대형 회화는 밤하늘에서 찾아낸 별무리를 그린 성싶다. 작은 별들이 촘촘히 모여 커다란 덩어리를 이뤘다. 그 옆 작품은 봄밤을 어지럽히는 벚꽃인 줄 알았다. 작은 꽃잎 하나하나가 빛나듯 춤춘다. 별 같고 꽃 같은 이 그림의 제목은 ‘위대한 퍼포먼스-촛불시위’이다. 그러고 보니 검은 캔버스 위에 하얀 점들 사이로 난 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총 7개 전시실이 서로 다른 작가의 방인 양 다채롭다. 그중 2층의 작품들은 더없이 세련됐다. 미니멀리즘 같은 말쑥함과 표현주의 같은 강렬함을 두루 느껴볼 수 있는데, 정작 이들은 길가다 눈에 띈 보도블럭이나 노면 보수 현장, 바닥에 붙은 본드 자국, 뒤엉킨 고무줄 등을 그대로 옮겨 그린 작품이다. 무심한 일상을 유심히 들여다봤을 때 발견되는 묘한 교감을 예술가적 예민함으로 끄집어낸 결과다. 별것 아닌 일상이 고매한 예술의 아름다움보다 못할 게 뭐 있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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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사례-일반인의 그림’이나 유튜브 동영상 등 다른 사람의 제작물이 작가의 ‘포장’을 거쳐 전시됐다. 아름다움이라는 고매한 가치를 내려놓은 대신 누구나 예술의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제안이다.

3층 안쪽 전시실은 좀 충격적이다. 벽과 천장 전체를 뒤덮은 개나리색 노랑이 이토록 서늘할 수 있을까. 텅 빈 공간은 노란빛과 네팔에서 사 온 말방울 소리로 채워졌다. 낮게 울리는 말방울은 다치지 않게 피하라는 “조심하세요”의 뜻이다. 작가는 “피어오른 개나리 무더기가 갑자기 다가온 봄을 알리며 놀라게 하듯, 즐비하게 매달린 노란 리본을 목격한 어느 날 그 강렬한 충격이 인상적이었다”며 “전시 제안을 받고 작품 준비를 하던 지난해만 해도 ‘세월호’는 잊혀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생각과 의미가 공유되는 예술을 소망하는 그는 “사물을 순수하게 본질적으로 보게 하는 것도 작가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5월14일까지.

윤동천 ‘서로 기대다’는 변기 수위조절용 스테인레스 볼 2개를 맞붙여 제작됐다. /사진제공=금호미술관윤동천 ‘서로 기대다’는 변기 수위조절용 스테인레스 볼 2개를 맞붙여 제작됐다. /사진제공=금호미술관


윤동천 ‘우리-얽히다 고무줄 드로잉1’ /사진제공=금호미술관윤동천 ‘우리-얽히다 고무줄 드로잉1’ /사진제공=금호미술관


윤동천 ‘덧대다-노면보수 1’ /사진제공=금호미술관윤동천 ‘덧대다-노면보수 1’ /사진제공=금호미술관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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