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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진단-대우조선 해법 딜레마]국민연금 큰 그림을 보라

채무조정 실패 땐 후유증 커

기간산업 붕괴로 이어질수도

기금운용 '국민 눈'으로 판단

국가경제 '소탐대실' 막아야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이자 채권단인 산업은행과 최대 사채권자인 국민연금이 채무조정안을 놓고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11일 국민연금은 전주로 내려온 정용석 산업은행 부행장에게 4월 만기 채권의 원리금 상환을 3개월 정도 유예 하는 것과 제3의 기관을 통한 대우조선해양의 자료 검증을 요구했지만 산업은행은 거절했다. 금융당국도 산은도 국민연금도 명분에 밀리지 않으려 하며 시간만 허비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외나무다리에 마주 선 염소처럼 상대방의 양보를 원할 뿐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산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바라보고 있다. 국민연금은 이날 채무조정안에 대한 동의가 “특정 기업을 살리기 위해 국민 노후자금의 손실을 감내하는 선택”이라고 밝혔다. 기금운용의 재무적인 판단만이라면 타당한 말일 수 있지만 대우조선해양의 채무조정 실패 후 닥칠 후유증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다. 대우조선해양이 부도로 결말을 낼 경우 일자리를 잃을 5만명(협력업체 포함)도 2,000만 국민연금 가입자의 일부다. 여기에 조선기자재 업체는 물론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 등에도 연쇄적인 악영향을 끼쳐 조선산업 전체에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560조원의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에 3,500억원의 손실은 티도 안 날 수 있지만 티 나지 않는 손실이 국민연금의 기반을 흔들 수도 있다는 점을 잊고 있다. 국민연금은 가입자의 입장뿐 아니라 국민의 눈으로도 연금을 운용해야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정점에서 홍역을 치르며 국민연금은 얼어붙었다. 의사결정에서 원칙을 고집한다. 스스로 만든 나쁜 선례에 발목이 잡혀 내부원칙을 깨려 하지 않는다. 논란이 일 만한 일에는 아예 손을 대지 않으려는 이른바 공직사회의 ‘변양호 신드롬’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도 뿌리를 내렸다. 데면데면하던 산은과 국민연금은 지난달 23일 이후 세 차례 만났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세 차례의 만남이 모두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려는 수단이었을 뿐 설득의 자리는 아니었다. 지난달 30일 산은·수출입은행 등 채권단과 실사보고서를 작성한 삼정KPMG, 법무법인 태평양이 전주로 내려가 기금운용본부 실무진을 만났다. 4시간 정도의 만남 이후 국민연금은 실사보고서 원본 등을 요구했다. 자료에 대해 옥신각신하던 양 당사자는 아무런 합의점도 찾지 못했다. 두 번째 만남이 있었던 지난 9일 국민연금은 채무조정의 조건을 꺼냈다. 회사채 일부 상환 또는 산업은행의 상환보증, 대주주의 추가 감자, 출자전환비율 재조정 등 크게 세 가지 조건을 꺼냈지만 산은은 다음날인 10일 채무조정안 설명회에서 거부했다. 다만 출자전환 후 남은 회사채 50%를 3년간 상환 유예하면 우선상환권을 줄 수 있다는 ‘구두’ 약속만 제시했다. 세 차례의 만남 이후 채무조정안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



이런 상황이 전개될지 국민연금은 몰랐을까. 금융위의 대우조선해양 채무조정안 발표 직후 만난 국민연금 고위관계자는 “손실 규모보다는 손실에 대한 책임과 또 하나의 전례를 남긴다는 사실이 문제”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에 대한 손실보다 이후 ‘기금운영원칙 훼손’에 따르는 정치적 책임을 두려워한다. 구조조정은 이해 당사자의 설득과 합의의 과정이다. 현시점에서 가장 우선시돼야 하는 조건은 대우조선해양의 회생이다.


한때 리커창 중국 총리의 랴오닝성 서기 시절 최대 경제 업적으로 불렸던 STX다롄. 170만평에 5개의 골리앗 크레인, 4개의 선대(육상 도크), 세계 최대 규모의 드라이도크에 엔진ㆍ선박블록 공장까지 갖춰 위용을 자랑하던 STX다롄은 2013년 멈췄다. 중국 언론이 ‘쓰레기 공장’으로 변했다고 폄하할 정도로 버려진 조선소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2만5,000명의 직원이 내뿜는 열기와 쇠망치, 크레인 소리로 떠들썩했다. STX다롄 사태로 동반 진출한 52개 국내 협력업체도 연쇄부도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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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조정 해법을 두고 첫 고비조차 넘지 못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에 닥칠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 하지만 바다 건너 중국에 있던 STX다롄과 비교해 대우조선해양의 정리는 57조원의 피해도 피해지만 5만명의 일자리를 날려버린다.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을 원칙론에만 의존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오는 17일 사채권자 집회에서 채무조정안이 부결되면 대우조선해양은 사실상 법정관리로 넘어간다. 프리패키지드플랜(P플랜)이 시행되면 저유가로 수익성 확보가 어렵거나 아직 용선처를 확보하지 못한 선주 등에게는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 중인 114척 중 빌더스디폴트(선박건조계약 취소) 조항이 있는 배는 96척이다. 삼정KPMG는 P플랜 돌입 시 8척의 빌더스디폴트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에는 각각 1조원의 유동성이 묶여 있는 소난골과 시드릴의 드릴십이 포함돼 있다. 2013년 STX다롄은 8,000만달러(약 912억원)에 수주한 세계 최대 가축운반선의 빌더스디폴트가 발생하며 2년 뒤 1,760만달러라는 헐값에 이를 매각했다.

/ hskim@sedaily.com

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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