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 마이크 없나요”
11일 오전 10시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 차기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 발표에 나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소개를 받자마자 던진 말이다.
그는 단상을 밀치고 무선마이크를 잡더니 과거 벤처창업 시절의 스토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몇 년 전에 지금의 그를 만든 청춘콘서트를 보는 듯 했다. 안 후보는 줄곧 자유스러운 분위기속에 자신감과 여유있는 말투로 중소기업단체 관계자, 기업인, 대학생과 일반인 등 700여명에게 정책방안을 풀어 냈다.
불과 하루 전 이 시각 이 장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대선후보가 같은 주제로 청중(유권자)들을 만났다. 하지만 두 후보의 연설 방식은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났다. 문 후보는 단상에 마련된 고정마이크를 통해 청중들 뒷편에 설치된 자막기(프롬프트)에서 나오는 글씨를 토씨 하나 어기지 않고 착실히 읽어 내려가기만 했다.
대중연설과는 거리가 먼 ‘읽기’ 그 자체였다. 유권자와 교감하는 방식만 보면 안 후보의 승리다. 이틀간 행사장을 찾은 한 관계자도 “안 후보가 훨씬 자유롭게 소통하고 자신의 철학을 말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안 후보는 이날 너무 자유스러운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가장 중요한 정책은 놓쳤다. 바로 요즘 중소기업들의 최대 관심사인 중소기업청의 부처 승격과 관련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던 것. 서둘러 행사장을 빠져 나가는 안 후보를 붙들고 일부 기자들이 묻자 그제서야 “이미 공약에 나온 것처럼 창업중소기업부로 만들겠다”란 말만 던지고 사라졌다. 전날 ‘읽기’에 충실했던 문 후보가 “중소벤처기업부를 만들겠다”란 한마디로 좌중의 환호와 우레 같은 박수를 이끌어냈던 것과는 극명하게 비교되는 장면이었다.
사실 두 후보의 중기정책은 엇비슷하다. 중소기업청의 승격을 비롯해 대기업 부당거래 방지를 위한 공정거래위원회 강화, 중기 취업청년에 임금 보전, 재창업지원 강화 등 굵은 뼈대는 일치한다. 그만큼 현재 국내 중소기업들이 처한 절박한 현실을 누구나 공감할 수 밖에 없고 해법 역시 이미 정해져 있다는 얘기다.
악마는 디테일(Detail)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다. 거대담론에만 신경쓰다 보면 작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는 경고의 말이다. 대선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팽팽한 대결을 펼치고 있는 두 후보도 마찬가지다. 틀 속에 박혀 감동이 없는 준비된 후보와 유연하지만 기본기가 덜 된 후보가 과연 중소기업인들의 땀을 얼마나 잘 닦아줄 수 있을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hanu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