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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테너 신상근, 도전정신 불태우는 러시아 오페라로 국립오페라단 첫 데뷔

도전정신 불태우는 러시아 오페라로 국립오페라단 첫 데뷔

관극 포인트는 보리스의 고뇌와 그리고리의 연대기

가수의 발걸음 속에도 드라마 심기위해 분투 중

꿈의 무대 메트에서 소프라노 디아노 담라우와 호흡 맞춰

세계 메이저 오페라극장 누비는 가수? 난 생계형 가수

무대에서 다 태울 수 있는 오페라 가수 될 것

리릭 레제로 테너 신상근(43)은 독일을 주무대로 칼스루에 바드 국립극장, 하노버 국립극장, 슈투트가르트 오퍼, 하이델베르크극장,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 등을 누비며 탄탄한 실력을 쌓아온 성악가이다.

세계 메이저 오페라극장을 누비는 그가 한국 무대에 오른 것은 2013년 노블아트오페라단 ‘리골레토’ 2015년 라벨라오페라단의 ‘안나 볼레나’ 두 번뿐이다. 그가 오는 20∼2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는 국립오페라단의 ‘보리스 고두노프’로 세 번째 출사표를 던졌다.




국립오페라단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을 앞둔 테너 신상근은 “보리스의 고뇌와 그리고리의 일대기를 눈여겨 보다보면 관극의 재미가 더 할 것이다”고 말했다./사진=조은정 기자국립오페라단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을 앞둔 테너 신상근은 “보리스의 고뇌와 그리고리의 일대기를 눈여겨 보다보면 관극의 재미가 더 할 것이다”고 말했다./사진=조은정 기자


무소륵스키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는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에 러시아를 지배했던 실존인물 보리스 고두노프의 비극적인 일대기를 그린 대서사적인 작품. 보리스 고두노프는 황권 찬탈의 야심을 품고 황태자를 살해하고 그 망령에 시달리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국내 오페라 무대에서 이 작품이 공연되는 것은 1989년 러시아 볼쇼이 극장의 내한 공연 이후 28년만이다. 특히 국내 단체가 직접 제작해 무대에 올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단측은 ‘보리스 고두노프’ 무대 경력이 있는 실력 있는 국내 성악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신상근에게 콜이 왔다. 그는 ‘보리스 고두노프’란 작품은 세 번째 도전하고, 그 중 ‘그리고리’란 인물은 두 번째 맡아본다고 했다.

그는 “독일 칼스루에 국립극장에서 했었다. 당시 콘셉트 자체가 ‘스타워즈’를 떠올리게 해 판타지 같은 느낌을 준 프로덕션이었다.” 며 “‘보리스 고두노프’는 국내는 물론 유럽에서도 자주 올라가는 작품이 아니라 연출자들 역시 도전정신을 가지고 하는 작품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황태자 디미트리를 사칭하는 ‘그리고리’ 역을 맡았다. 여타의 오페라에서 비교적 단선적으로 그려지는 테너 롤이 아닌 감정적으로 굉장히 복잡한 인물이다. 게다가 드라마적인 임팩트가 강한데, 음악 자체도 무거운 경향이 짙어 성악가들이 섣불리 도전하기 힘든 오페라이다.

그는 “그리고리는 쉽지 않은 역할이다. 가수들이 어려운 러시아어로 노래를 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연스럽게 연기해야하기 때문에 움직임에 대한 고민도 크다”고 말했다.

2015년 국립오페라단 ‘안드레아 셰니에’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가 다시 한번 연출을 맡았다. 이번 공연 역시 연출은 물론 무대, 의상, 조명, 안무를 모두 맡아 오페라 무대를 위한 총체적인 예술적 해석의 결정체를 선보일 예정이다.

마치 현대적 율리시스와도 같이, 등장인물들은 각각의 여정에서 뭔가를 배우고 성장한다.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심리는 대중의 합창 멜로디에 녹아들면서 오페라 ‘돈카를로’나 ‘로엔그린’에서와 같이 각 개인 간에 그리고 집단 간에 강력한 콘트라스트를 형성한다고 한다.

‘보리스 고두노프’의 극적 요소들과 플롯은 마치 셰익스피어의 걸작 리어왕이나 맥베드처럼 복잡하다. 스테파노 포다는 신상근에게 “걸어다니는 것 만으로 악몽을 표현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이번 연출 콘셉트는 굉장히 진중해요. 그리고리는 수도원에서 도망 나와 방랑자 신세가 되는데 그 부분이 단순하지 않아요. 특히 첫 장면에선 꿈을 꾸다가 깨는데, 제가 깨어날 때 이 곳이 전부 제 꿈 속 처럼 생각하게 하셨어요. 그리고리가 무대 위에서 돌아다니는데 관객들에게 악몽을 꾸다 깨어났다는 걸 이해시켜야 해요”

그는 관극 포인트로 ‘보리스의 고뇌와 그리고리의 연대기’를 꼽았다. 감정 고저가 심한 두 인물인 보리스와 그리고리의 갈등을 주의 깊게 보다보면 관극 재미를 느끼게 된다는 것. 무엇보다 자칭 드미트리라고 주장하는 그리고리가 “사기로 시작해서 정말 스스로를 드미트리로 믿게 되는 거짓말쟁이의 심리 과정을 제대로 담아내고 싶다”고 했다.

/사진=조은정 기자/사진=조은정 기자


/사진=조은정 기자./사진=조은정 기자.



러시아어 딕션 연습에도 공을 들이고 있는 신상근은 “딕션 코치 선생님이 연습 때마다 매의 눈으로 지켜보다 바로 바로 피드백을 준다” 며 “스스로 디테일하게 잘 소화해낼 수 있게 하나 하나 신경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러시아 오페라는 이태리 오페라나, 프렌치 오페라와는 또 다른 말의 리듬이 있더라. 프레이즈가 끝났다 싶으면 더 남아있고, 이 타이밍이 맞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빨리 나온다는 디렉션이 와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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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라보엠’ 로돌포 역과 올해 초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 역으로 깜짝 데뷔하여 화제를 모았다. 하노버 국립극장에 1년간 휴직 계를 내고 메트로폴리탄으로 날아간 신상근은 “휴스턴 그랜드 쪽도 극장이 진짜 큰데 메트 쪽은 더 크더라. 꿈의 무대인 건 맞는데 체감하기엔 그리 크게 다른 건 모르겠더라”며 웃었다. 이어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소프라노 디아노 담라우랑 호흡을 맞춘 소감을 물어보니 “디바라고 하면 건방진 사람들도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고 정말 사람이 좋더라”고 답했다.

메트에서 그를 반갑게 맞아준 이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선배 베이스 연광철이다. 오페라계의 안성기라고 불릴 정도로 후배들이 늘 닮고 싶어하는 연광철의 한마디가 그에게 힘을 줬다고 했다.

“선배는 제가 스스로 만족이 안 돼서 기운이 다운 돼 있던 찰나에 전화를 해 주셨어요. 그래서 술 한잔을 했어요. 선배는 네가 일단 하고 싶은 것을 해라. 네가 하고 있는 것을 열심히 하고 있으면 기회가 온다고 말해주셨어요. 여러 가지로 고마운 분이시죠”

솔직 담백한 그의 음악 인생에 영향을 미친 세 명을 꼽자면, 스승 신영조, 테너 이승묵, 바리톤 조규희 선배이다. 그들이 그의 이성과 감성 그리고 예술정신에 조금씩 파문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인터뷰 중간 중간 그는 스승과 선배들이 있어 좋은 방향으로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테너 김우경(한양대 교수), 이용훈(서울대 교수), 김재형(경희대 교수)에 이어 네 번째 로 메트로폴리탄 무대에 오른 국내 테너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탑5’ 에 드는 국내 테너로 위상이 높아졌다. 그는 “절대 그렇지 않다” 고 손사래를 치며, “열심히 해 나가고 있는 생계형 가수이다”고 자평했다. 그렇다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만 노래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무대가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독일에서 극장 소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제 책상에 아무것도 안 놔뒀어요.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는 말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거든요. 그만큼 프로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요. ”

성악가의 삶은 쉽지 않다. 늘 낯선 도시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거나, 연습실과 무대를 오가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외로움도 많이 느낀다. 무대에선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막상 공연이 끝나고 내려올 때면 허전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오페라 가수라는 게 직업으로 삼기엔 좋은 편은 아니죠. 따져보면 1년에 9개월 이상을 집에 들어오지 못해요. 그것도 거의 혼자 있어야 하거든요”이라며 “가끔 후배들에게 마스터 클래스를 할 때면 ‘노래하는 걸 직업으로 삼지 말라’는 말을 하기도 해요. 그 만큼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라는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최근 국립오페라단이 선 보인 오페라 ‘팔리아치& 외투’를 본 그는 소프라노 임세경의 무대가 자극이 됐다고 한다. 임세경과 한양대학교 동기이기도 한 신상근은 “세경이가 무대에서 다 태우는 걸 보고... 과연 나는 다 태울 수 있을까란 생각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가수가 온 몸을 던져서 노래해야 한다는 게 맞는 말이긴 하지만, 월급형 가수를 10년 넘게 하다보면 또 다른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매일 매일 반복적으로 노래해야 하는 일정 앞에서 그 다음 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노래하는 임세경의 무대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가끔 내가 가진 게 100이라면 오늘 밤에 100프로를 다 써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해요. 내일 공연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되잖아요. 그게 몸에 배어 있다 보면 오늘 100프로를 써야지 보다는 ‘내일을 위해 오늘은 80프로가 적당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드는 순간이 와요. 좀 더 현명하게 조율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노래라는 게 그렇게 매뉴얼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전 매 무대에서 제 모든 걸 태우겠습니다는 말 보다는 ‘죽기 전에 제가 가진 모든 걸 태워보고 싶어요’ 하하하”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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