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주인없는 포스코 잔혹사...17년 이어진 '권력의 봉' 악순환 끊어야

'안종범 수첩' 통해 드러난 민낯

靑, 시시콜콜 임원 인사까지 개입

옛 '포스코=국영기업' 인식 버리고

CEO 선임 등 실질적 자율권 보장해야

◇ 1990년대 이후 역대 포스코 회장 잔혹사

회장 취임 시기 퇴진 시점
황경로 1992년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사퇴
정명식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1년 후 사퇴
김만제 1994년 김대중 정부서 중도 사퇴
유상부 1996년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중도 사퇴
이구택 2003년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중도 사퇴
정준양 2009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중도 사퇴
권오준 2014년 2017년 3월 연임 성공



지난 6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찾았다. 포스코 측에서는 오인환 철강사업 부문 사장과 김학동 광양제철소장이 나와 문 후보를 맞았다. 문 후보가 “광양제철소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이라며 포스코를 치켜세웠지만 최근 연임에 성공한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보이지 않았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최순실 국정농단’에 엮여 검찰 조사까지 받으며 곤욕을 치렀던 권 회장이 유력 대권주자인 문 후보를 맞이한다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자칫 문 후보를 응대하는 권 회장의 모습이 유력 대권주자에게 줄을 댄다는 식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전임 포스코 회장들은 차기 정권이 들어선 후 하나같이 불명예 퇴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왜 포스코는 민영기업인데도 권력에 휘둘리고 오너 잔혹사가 끊이지 않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제 포스코에 실질적 자율권을 보장하는 등 17년간 이어진 ‘권력의 봉’이라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000년 민영화됐는데도 여전한 권력의 개입=2000년 9월 완전 민영화에 성공한 포스코는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최고 권력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권과 재계 안팎에서는 포스코의 독립성을 완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포스코에는 청탁성 민원이 끊이질 않는다. 최근 검찰 조사 과정에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수첩을 통해 청와대의 포스코에 대한 개입 정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업계에서조차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다.

자회사 대표이사 선임은 물론 인사 청탁과 임원 인사 등 시시콜콜한 경영 사안까지 청와대가 간섭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례처럼 정권이 바뀌면 최고경영진 등이 입맛에 맞는 인물로 물갈이되고 기존 경영진은 불명예 퇴진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오너 없는 기업의 잔혹사=국민연금을 최대주주(지분율 11.04%)로 둔 ‘민간 기업’ 포스코가 모범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갖췄다고 평가받으면서도 정권에 휘둘리는 이유는 뭘까. 포스코 사정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강력한 오너십이 있으면 정권 차원의 개입이 이뤄지기 어렵다”며 오너의 부재를 근본 원인으로 꼽았다. 이 관계자는 “오너의 독단적인 경영에 따른 ‘오너 리스크’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포스코는 오히려 ‘관치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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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는 1997년 사외이사제 도입 이후 사실상 ‘오너 없는 기업’임에도 우수한 지배구조를 갖췄다고 평가받아 왔다. 사외이사 추천을 저명한 인사들로 구성한 별도의 외부 기구에 맡겨 외풍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포스코를 다섯 차례나 지배구조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오너 없는 회사라는 점이 권력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이사회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 해도 인사 개입까지 이사회에서 의결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최순실 사태 계기로 악순환 끊어야=이번 사태를 계기로 포스코에 대한 권력층의 간섭이 완전히 차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위해서는 포스코 자체적으로 외풍 배격 의지를 다지는 것에 더불어 권력 스스로 포스코에 대한 인식을 싹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포스코=국영 기업’이라는 인식이 아직 권력 상층부에 남아 있는 것 같다”면서 “이런 인식을 버리는 것이 포스코의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포스코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공기업적 마인드 역시 쇄신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권 회장이 2020년 3월까지의 두 번째 임기를 모두 채우는지가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권 회장 이전 역대 회장들은 새 정권이 들어선 후 각종 비리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며 물러났다.

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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