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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세일즈맨의 죽음’ 동시에 같은 불행을 견디고 있던 타인에게

보기 편한 연극은 아니다. 인간의 밑바닥을 무대 위로 끌어 올렸다. 한없이 불행해 보이는 그들은 어쩐지 나와, 그리고 우리의 부모와 닮았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현대 사회를 사는 이들의 근원적 괴로움을 담았다. 각자 겪고 있지만 말하지 못했던 그 아픔은 연극을 통해 형상화된다. 어느 정도 머리가 큰 자식, 그리고 어느덧 흰머리가 희끗해진 부모에게 이 작품은 소통의 기회다.

/사진=예술의전당/사진=예술의전당


“평생을 일했는데 늙었다고 봉급도 안 줘”


1930년대 미국, 세일즈맨이자 가장인 윌리 로먼의 상황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장거리 영업을 하러 다니면서 기본급도 못 받는 신세다.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지난 2014년 한국에서는 명예퇴직을 거부한 공무원의 책상이 1층 현관으로 옮겨졌다. 일생을 몸 바쳐 일해도 늙으면 회사에서 나가야 한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수모를 당한다.

“길을 잃는 건지 길을 찾는 건지”

윌리 로먼의 아들 비프 로먼의 이야기다. 30대 초반의 그는 직업이 없다. 부모의 기대는 큰데 정작 본인은 자신감이 없다. 대한민국 청년들의 상황이라고 다를까. 통계청의 지난 1월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실업자는 43만 5,000명. 전체 실업자의 43%에 이른다. 길을 잃었다는 사실 조차 잊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극작가 아서 밀러는 1949년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 발표했다. 같은 해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연극은 퓰리처상 극본상, 뉴욕드라마비평가협회 최우수작품상 및 토니상 등을 휩쓸었다. 어둡고 암울한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파고들어 호평을 얻었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1930년대 경제대공황을 속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아서 밀러는 대공황 시절 사업 실패로 자살한 자신의 삼촌을 모델로 삼았다. 뉴욕 브룩클린에 사는 한 세일즈맨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면서 겪는 좌절과 가족 간의 갈등을 현실적으로 풀어냈다.

외로운 가장 윌리 로먼과 그를 믿고 내조하는 부인 린다 로먼, 변변한 직업 없이 무기력한 장남 비프 로먼, 가족의 무관심 속 방치된 차남 해피 로먼. 대서양을 넘어 미국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다.


윌리와 비프는 지독히도 싸우고 또 싸운다. 언성을 높이고 멱살을 잡고 서로를 원망한다. 상대방이 왜 저렇게 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생활을 이어가기만도 바쁜 현실이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도 여유도 없다. 자식은 생각한다. “내 삶도 지치고 피곤한데 부모와의 관계도 문제다. 더 힘들다”고. 부모도 마찬가지다.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자식은 아직 자리를 잡지도 못했다”고 근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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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예술의전당/사진=예술의전당


자기 객관화는 힘들다. 성인(聖人)이 아닌 이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누구나 내 아픔을 남의 아픔보다 크게 느낀다. 결국 갈등은 계속된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이처럼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아주 적절한 작품이다. 아버지의 절망을, 어머니의 근심을, 자식의 혼란을 무대 위에 펼친다. 치열하게 대립하던 이들이 한 발자국 물러나 타인을 돌아보게 만든다.

윌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외되고 고립되는 중장년층을 대변한다. 최신 녹음기의 작동법을 모르는 윌리와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지 않은 기성세대는 통한다. 1930년과 비교해 2017년의 산업 발전 속도는 더욱 빠르다. 청년이라고 자만하다가는 언제 시대의 흐름에 휩쓸릴지 모른다. 뒤처지는 이들에게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다.

비프는 낙제생과 특별한 아이라는 두 개의 굴레를 썼다. 부모의 기대 속 그는 남부럽지 않은 사업가이지만 현실 속에서는 대학교를 포기한 후 어느 일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일명 ‘루저’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아버지와의 갈등이 큰 위치를 차지한다. 자녀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주입하는 부모에게 경각심을 주는 부분이다.

마지막 장면도 인상 깊다. 로먼 부부는 주택 할부금을 몇 십 년에 걸쳐 다 갚았다. 그런데 그 집에 살 사람이 없다. 아내는 죽은 남편을 앞에 두고 “처음으로 빚 진 것 없이 홀가분해졌다. 자유롭냐”고 말한다. 여기서 자유란 곧 죽음이다. 너무나도 절망스러운 현실이다. 죽지 않고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끝까지 음울하다.

여기에 무대 연출이 큰 역할을 했다. 어릴 적 부자의 추억이 서렸던 큰 나무의 샌드백은 어디로 사라져버렸다. 대신 샌드백을 매달았던 줄만 남았다. 마치 인물들의 목을 옥죄는 목줄 같이 을씨년스럽다. 집을 둘러싼 거대한 벽은 점차 가까워진다. 가족들은 더 이상 갈 곳을 잃는다.

한태숙 연출은 의도했다. 이 연극을 본 관객들이 슬픔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않았으면 했다. 극장을 나가, 내용을 곱씹으며 천천히 걸어보길 바랐다. 어두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그래도 나에게는 가족이 있음에 위안 받기를 원했다. 관객들은 연극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낙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동시에 같은 불행을 견디고 있던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음울한 사회상을 담은 이 연극의 가치다.

한편 ‘세일즈맨의 죽음’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오는 12일부터 30일까지 공연한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양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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