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유전자 검사와 생명윤리

정현용 마크로젠 대표

정현용 마크로젠 대표


지난 1973년 미국 대법원이 낙태를 합법화했다. 4년 후 미국 각 주에서는 다운증후군 환자가 최대 40%까지 감소했다. 1989년에는 영국인 부부 두 쌍이 남아에게만 나타나는 중증 X염색체로 인한 정신 지체의 가능성을 피하고자 ‘착상 전 유전진단(PGD)’ 기술을 통해 딸을 선택적으로 출산했다. 딸들은 지금도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예비 부모는 아이가 기형일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판단될 때 아이를 가지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아이는 ‘유전적’ 결함 없이 태어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 진단과 이를 통한 인위적 개입에는 사회적으로 합의돼야 할 수많은 법적·도덕적 쟁점이 있다. 누구도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와 ‘심각한 유전적 결함’이 무엇인지를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0년, 미국 조지아주에서는 흥미로운 실험이 진행됐다. 실험 설계자들은 마약 투여와 폭행, 청소년 범죄가 난무하는 한 지역의 600세대를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고 실험군 가족의 부모와 자녀에게 7주 동안 알코올 중독과 폭행, 마약 투여를 예방하는 활동을 하고 대조군 가족은 그대로 놓아둔 채 두 그룹의 행동을 관찰했다. 또 두 그룹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5HTTLPR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다. 5HTTLPR 유전자는 전체 인구의 약 40%가 짧은 변이체를 가지고 있다. 5HTTLPR 유전자의 짧은 변이체를 가진 경우 불안 행동과 우울증, 알코올 중독 등에 빠질 위험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검사 결과 짧은 변이체를 가진 아이들은 폭음과 폭행, 마약 투여의 빈도가 긴 변이체를 가진 아이들보다 두 배 높았다. 실험 전 예상과 일치한 결과였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짧은 변이체를 가진 아이들이 교육과 정서적 지원에 따라 빠르게 개선됐다는 점이다. 같이 진행된 다른 실험에서는 5HTTLPR 유전자의 짧은 변이체를 가진 고아들이 긴 변이체를 가진 고아들보다 풍족한 환경에서는 더 우수한 자질을 갖춘 성인으로 성장하는 경향이 있음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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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실험의 결과를 통해 짧은 변이체를 가진 아이는 심리적 외상을 일으키는 환경에서는 삐뚤어질 가능성이 더 크지만 충분한 보살핌이 주어지면 훌륭하게 성장할 가능성도 높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긴 변이체를 가진 아이는 부정적 환경의 영향을 덜 받지만 긍정적 경험의 혜택도 크게 보지 못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예산 제약의 극복을 위해 투입 예산에 비해 그 성과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에게만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인가. 아닐 것이다. 앞의 실험에서 보듯 유전자의 상관관계는 있지만 절대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각자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할 준비가 돼 있는가. 이 역시 아닐 것이다. 법적·도덕적 기준 마련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다.

정현용 마크로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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