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정지영(28)씨는 최근 한 대형 온라인서점에서 7만원어치 책을 주문하고 3만원 상당의 혜택을 받았다. 홈페이지에서 클릭만 몇 번 하자 1만6,000원 상당의 상품권과 파우치, 필기구 세트 등 여섯 가지 사은품도 따라왔다. 주말마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게 취미였던 정 씨는 이러한 혜택을 접한 뒤 동네 서점을 거의 찾지 않게 됐다.
오는 11월 개정도서정가제 일몰을 앞두고 출판계에서 도서정가제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행 정가제가 무분별한 가격경쟁을 지양하기 위해 3년 전 개정됐지만 법망이 허술해 대형 온라인서점의 각종 쿠폰·사은품 공세를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4일 본지 취재 결과 영풍문고·YES24·인터파크·반디앤루니스 등 4개 대형 온라인서점은 7,000~1만5,000원 상당의 상품권과 최대 2만원 상당의 사은품을 무더기로 제공해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을 깔거나 캠페인에 참여하는 등 클릭 몇 번이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혜택이다. 이날 정씨가 받은 사은품과 쿠폰 금액의 총액은 전체 도서 결제 금액의 50%에 달해 현행 도서정가제의 할인 제한범위인 15%(가격할인 10%, 경제적 이익 5%)를 훌쩍 넘어섰다.
대형 온라인서점의 할인 공세는 3년간 꾸준히 지적됐지만 번번이 규제 대상에서 벗어났다. 독점거래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는 출판물의 재판매가격유지행위(사업자가 최저판매가격을 직간접적으로 유지하는 행위)를 의무제가 아닌 허용제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점포가 가격유지규정을 따르지 않아도 위법은 아니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제22조)도 판매할 당시의 할인 폭과 경제상의 이익에만 제한을 두고 있어 직접적 판매할인이 아닌 사은품과 쿠폰을 위법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문화체육관광부의 설명이다.
출판계는 “실효성 없는 법안”이라며 반발했다. 대한출판물협회는 대형 온라인서점의 각종 할인 편법을 지적하며 “문화적 공공재인 책의 가격을 무차별적으로 낮추고 독립출판물의 다양성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쿠폰이나 사은품으로 도서정가제 허용 범위를 편법으로 어기는 행위는 출판계 내부에서도 논란이 많다”며 “이러한 문제를 반영해 도서정가제 할인율을 재조정하는 방안을 오는 11월께 결정할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