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한숨 돌릴새 없는 美 환율 공세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국제금융실장

韓 환율조작국 지정 피했지만

FTA 재협상 거론 등 압박 심화

美 무역적자 있는한 안심 못해

외환시장 투명성 선제적 제고

내수부진 따른 경상 흑자 설명을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국제금융실장


지난주 말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가 발표됐다. 중국과 우리나라 등 대미 무역흑자국에 대해 관찰대상국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그간 환율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공세 수위가 예사롭지 않았던 점에서 한고비는 넘었다고 생각된다.

돌이켜보면 과거 지난 1980년대 말 우리나라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데 따른 파장은 적지 않았다. 당시 미국은 슈퍼 301조 권한으로 우리나라를 불공정 무역행위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지정하고 통상보복을 가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1990년 환율제도를 시장평균 환율제도로 변경한 후 대미 무역수지는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됐고, 경상수지도 외환위기 전까지 적자가 지속됐다. 만약 이번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됐다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명분하에 우리나라는 더 큰 통상압력을 받게 되면서 그나마 회복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수출이 위축되고 경제 활력이 떨어질 것이 자명했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결코 안심하기는 이르다. 미국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환율 문제 제기는 비단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의 일이 아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인 2015년 이미 교역촉진법 제정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6개 대미 무역흑자국을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하면서 환율압박을 강화해왔다. 과거 우리나라와 대만 및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근거였던 종합무역법에 비해 이번에는 대미 무역흑자 및 경상수지 흑자 규모, 외환시장 개입 정도 등 구체적인 기준까지 제시함으로써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과 한국에서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까지 거론하며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속내는 환율조작국 지정 자체보다 FTA 등의 통상 문제와 환율 문제를 결부시킴으로써 교역상대국에 양면의 압력을 가하고 궁극적으로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데 있으므로 미국의 무역적자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지 않는 한 언제든 이 문제를 들고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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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환율이 강대국의 정치적 고려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승국인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일본 국기의 동그라미를 보고 엔화 환율을 달러당 360엔으로 처음 정했다는 얘기는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다. 1985년 미국이 주요 선진국들과 이끌어낸 플라자합의로 일본 엔화는 달러당 250엔에서 100엔대로 급락하였으며 이것을 일본의 장기 불황의 단초가 된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이어지고 정치적 상황이 바뀔 경우 미국은 언제든 다시 환율 문제로 중국을 압박할 것이다.

나아가 미국이 독일·일본 등 여타 관찰대상국들을 포함해 새로운 플라자합의를 구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와는 경제 상황이 다르다는 일반적 견해와 달리 최근 지지율 하락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언제든 이들 국가에 대해 환율 공세를 강화하더라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미 의회도 다른 사안과 달리 이를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도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대비해나가야 한다. 미국과의 공식 및 비공식 채널로 우리나라의 입장을 적극 설득해야 한다. 최근의 원화 환율 수준은 환율조작 결과가 아니라 미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화 강세에도 상당 부분 기인하고 있고 무역 및 경상 수지 흑자는 내수 부진의 결과임을 적극 설명할 필요가 있다. 북한과 관련한 지정학 리스크의 확산도 원화의 주요 약세요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울러 최근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 미국이 강조한 외환시장의 투명성 제고 방안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고 관련국들과 협력해 공동 대응방안을 모색할 필요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빌미를 주지 않도록 다각도로 노력해나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규모 대미 무역흑자가 지속되는 한 환율을 둘러싼 미국과의 줄다리기는 이제 막 시작 단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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