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21세기 술탄' 에르도안, 20년 독재 길 열었지만…

터키 대통령제 개헌안 가결

정치·행정·군사 실권 모두 장악해

최장 2034년까지 장기집권 가능

서방국가 "1인 독재체제" 우려

야권선 "부정투표" 의혹 제기

국내외 갈등 해소는 큰 숙제로





터키 개헌안이 16일(현지시간) 국민투표에서 간발의 차로 통과되면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20년 장기집권의 물꼬를 텄다. 하지만 개표 결과 발표 직후 터키 야권이 부정투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데다 서방 국가들이 터키의 1인 지배체제 강화에 반대하고 있어 에르도안 정권이 안팎으로 갈등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터키 선거관리위원회(YSK)는 이날 개헌안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찬성이 51.3%에 달해 해당 안이 통과됐다고 밝혔다. 반대는 48.7%로 찬반 득표율 간 차이는 2.6%포인트에 불과했다. 이날 투표율은 87%를 기록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밤 이스탄불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개헌안 국민투표에서의 승리를 선언하며 “터키 역사상 가장 중대한 정부개혁안을 제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개헌안 통과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장 오는 2034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개헌안에 따르면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1회 중임이 가능하다. 여기에 임기 만료 직전 사임한 뒤 조기 대선에서 승리하면 최장 15년간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다. 2014년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에르도안이 2019년 11월3일 개헌 후 첫 대선에서 승리한 뒤 연임에 성공하면 2029년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하게 되지만 임기 만료 직전에 조기 대선을 치러 당선된다면 2034년까지 20년 집권도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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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권한도 막강해졌다. 2019년 개정 헌법이 발효되면 총리직을 없애고 대통령중심제로 전환되면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지난 1923년 공화국을 수립한 지 96년 만에 의원내각제는 사라진다. 대신 대통령은 법률에 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하거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고 판검사 인사권까지 주무르며 사실상 사법부를 장악할 수 있다. 대통령은 한 명 이상의 부통령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받는다. 이로써 에르도안 대통령은 정치·행정·군사적 실권을 쥔 명실상부한 ‘술탄’으로 거듭나게 된 셈이다.

터키 야당은 개표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부정투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야권은 선관위가 투표 당일 날인이 없는 용지도 불법으로 유입됐다는 증거가 없다면 유효표로 인정하기로 방침을 변경한 것이 부당하다며 재검표를 요구하고 나섰다.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은 “투표함의 37∼60%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250만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며 “150만개에 달하는 무효표가 선관위에 의해 유효표로 인정됐다”고 주장했다. 쿠르드계 등 소수집단을 대변하는 인민민주당(HDP) 역시 “총투표의 3분의2에 대해 재검표를 요구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국제사회도 이번 투표 결과에 우려를 나타냈다. 각국 헌법재판기구 협의체인 베니스위원회는 “새 헌법 내용은 터키의 입헌민주주의 전통에 역행하는 위험한 시도”라며 “전제주의와 1인 지배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외환시장은 일단 지난해 8월 군부 쿠데타 이후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줄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는 개장 직후 2.5%까지 상승했다. 코메르츠방크AG는 리라화 가치 상승에 대해 “안도 랠리”라고 평가하면서도 “주변국과의 갈등으로 언제까지 강세가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김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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