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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을 다시본다] 금융기관·전문가로 이사회 꾸린 加연금투자위 벤치마킹 해볼만

<상> 국민연금 투자의 논리로 독립해야

어디에 왜 투자했는지 정부 간섭 전혀 안받아

국민연금도 정치셈법 대신 수익률 우선돼야

독립추구 좋지만 과도한 요구 등 갑질은 문제

1915A03 논란된 국민연금 투자결정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채무 재조정 사태를 계기로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개편 논란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채무 조정안에서 보여준 재무적투자자로서의 독립성은 국민연금의 의지보다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여론의 압박에 떠밀린 모습이다. 문제는 다르지만 앞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의사결정이 문제가 된 것도 본질은 마찬가지다. 정부의 산하기관이라는 지배구조에서 진작 벗어났다면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어떤 결정도 국민연금의 자율의지에 의한 투자 판단으로 그쳤을 것이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운영하는 국민연금은 투자의 논리로 독립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주주는 정부가 아니다. 리스크 관리와 성과 평가 등 모든 분야에서 정부가 통제권을 가진다면 국민연금 기금운영은 수익률 추구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변질 될 수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벤치마크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다. 캐나다연금(CPP)은 1998년 기금 고갈 위기의 돌파구를 수익률에서 찾으며 CPPIB를 독립시켰다. 이후 CPPIB의 투자이사회는 오로지 수익률 제고와 리스크 관리에만 집중했다. CPPIB의 평균 수익률은 11%를 넘는다.

◇지배구조 개편 서둘러야=국민연금 지배구조 모델로 꼽히는 CPPIB가 높은 수익률을 거두면서도 위험관리가 가능한 비결은 지배구조다. 이사회는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의 추천을 거치지만 정부 관계자가 아닌 금융기관과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다. 이사회는 투자전략정책을 만들고 기금운용 위험을 관리한다. 3년마다 캐나다 수석재정추계관실(OCA)에 기금운용결과를 보고하지만 어디에, 왜 투자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간섭받지 않는다. 국민연금이 감사원·국회·정부로부터 개별 투자 건까지 다중 감사를 받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CPPIB 관계자는 “기금의 독립적인 지배구조는 법으로 규정돼 있는데 이를 바꾸려면 지방정부 3분의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헌법을 바꾸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CPPIB의 최고책임경영자(CEO)는 정부가 아닌 이사회가 선임한다. 별도로 정해진 임기는 없다.


반면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는 정부에 의존할 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지만 기금운용위원회와 연금공단으로 나눠 관리된다. 주요 안건은 복지부 장관이 정성적으로 판단한다. 삼성물산 합병 당시 복지부 장관이 결정하게 된 이유다. 기금운용위는 복지부 장관의 자문기구일 뿐 독립적인 의사 결정 주체가 아니다. 그렇다고 기금운용위 구성 자체가 투자 전문가로 이뤄진 것도 아니다. 1년에 몇 차례 조찬 회동을 할 뿐인데 그나마 복지부 장관과 관련 부처 차관이 참석 대상자고 노동계·재계 등 전문성 없이 대표성만 띤 비전문가가 포함돼 있다. 수익률 역시 기획재정부가 기금운용계획안을 작성하고 복지부가 운용계획을 수립하는 등 제각각이다. 그나마 전문가 집단인 기금운용본부는 복지부에 종속되면서 탄력적이면서 능동적인 운용계획 수립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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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만 큰 어린아이로 변한 국민연금=국민연금은 559조원(1월 기준) 규모로 일본과 스웨덴에 이어 세계 3대 연기금에 든다. 좁은 국내 자본시장 안에서 덩치가 커버린 국민연금은 조금만 들썩여도 시장 전체가 휘청일 만큼 파급력이 크다. 법적으로 국민연금은 정치적 독립성을 갖고 있지만 덩치가 크다 보니 실제로는 정치권력과 그 아래 놓인 정부의 목적에 따라 휘둘려왔다.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투자도 마찬가지다. 2015년 8월 부채비율 상승으로 조기 상환을 요구할 수 있었지만 범정부 차원의 ‘대우조선 살리기’에 휘말려 포기했다. 외부에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에 개입하려는 시도가 국민연금의 독립성을 훼손시킨 셈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선거 때마다 국민연금을 서민 복지를 위해 써야 하지 않느냐는 논리를 빌미로 사회책임 투자를 말하기도 한다”며 “국민이 맡긴 돈이 정치권의 쌈짓돈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으로부터 간섭을 피하기 위해 공사화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국민연금 기금의 안정성을 강조하면서 기금운용본부의 공사 독립 가능성을 내비쳤다. 지배구조 개편의 방안일 수 있지만 이는 또 다른 정치적 개입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문 후보는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재벌개혁에 이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갑이 된 국민연금의 ‘갑질’ 논란=대우조선해양 채무 재조정 과정에서 국민연금은 정부를 배경으로 한 산업은행과 협상하면서 국민 여론을 무기로 무보증 회사채에 1,000억원의 담보를 얻어냈다. 전직 국민연금공단 고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동등한 협상 주체로서 무리한 요구를 통해 최대한의 이익을 가져가는 일종의 거래를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국민이 가입자’라는 사실을 확대해석해 특혜를 바란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우조선해양이 분식회계한 잘못이 사실이어도 이는 현행법 체계에서는 손해배상소송을 통해 해결할 문제다. 대주주 산업은행에 분식회계 책임을 물어 무보증이 원칙인 회사채에 보증을 요구할 수 없다.

철저한 시장 참여자를 자처하지만 금융투자업계가 보는 국민연금은 수수료 등 계약 과정에서 과도한 요구를 하는 또 다른 갑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해외투자에는 꼬박꼬박 수수료를 내면서 국내 증권사에는 수수료를 안 내겠다는 것은 갑질이나 다름없다”면서 “오히려 올바른 투자자라면 수수료에 합당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임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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