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실리 찾는 美, 무역공세 수위 낮춰...'한미FTA 최종 향방'은 6월 판가름

■한미FTA '재협상' 아닌 '개선'

발효 5년 지나...'무역적자 보고서' 나와봐야 입장 파악

관세율 韓8%·美2%...재협상땐 미국이 더 손해 가능성

韓 오히려 TPP수준 업그레이드에 독소조항 해결 기회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두고 내놓은 첫 청사진은 ‘재협상(Renegotiation)’이 아닌 ‘개선(Reform)’이었다. 미 상무부의 환율조작국 지정 칼날도 비켜간 뒤 한미 FTA 재협상 카드도 실리를 찾는 방향으로 재조정되면서 미국의 무역공세가 낮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렇다고 한미 FTA에 대한 미국의 최종 입장이 공식화된 것은 아니다. 발효 5년이 지난 한미 FTA 협정문의 향방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적자 심층분석 보고서’가 나오는 오는 6월께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어찌 됐건 미국이 무역공세 수위를 다소 낮춘 것은 한미 FTA가 미국에도 그만큼 이익이 됐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18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에 따르면 한미 FTA로 인한 무역수지 개선 효과는 158억달러에 달한다. 지난 2015년 미국이 우리나라와의 상품교역에서 본 적자는 283억달러. 한미 FTA가 체결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면 무역적자가 440억달러까지 늘었을 것이라는 게 USITC의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이 한미 FTA 협상 당시 공을 들였던 승용차·의약품·쇠고기 등의 국내 수입은 크게 늘었다. 한미 FTA 발효 이전인 2011년 3억5,000만달러에 불과했던 자동차 수입액은 지난해 기준 16억8,000만달러로 다섯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의약품도 같은 기간 수입액이 6억1,000만달러에서 11억2,000만달러, 쇠고기는 6억5,000만달러에서 10억4,000만달러로 늘었다.

무역장벽을 낮추면서 일어난 투자 효과도 우리나라보다는 미국이 톡톡히 봤다. 한미 FTA가 발효된 2012년 70억1,000만달러였던 우리나라의 대(對)미국 투자금액은 4년 새 180억달러로 156.7%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대한국 투자금액은 36억7,000만달러에서 38억8,000만달러로 5.7% 증가했을 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표현대로 ‘잡 킬러(Job Killer)’도 아니었다.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BEA)에 따르면 미국 내 한국 기업의 고용인원은 2011년 36만2,000명에서 2014년 47만명까지 늘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미국 수출품에 대한 평균 관세율이 8%이고 미국의 우리나라 수출품 평균관세율은 2%가량이다. 재협상을 통해 역행한다면 누가 손해일지가 뻔히 보인다”며 “설사 미국이 한미 FTA 재협상을 하겠다는 엄포를 놓더라도 우리나라가 부화뇌동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 통상 당국도 한시름 덜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리폼(Reform) 발언은 향상(Improve)의 의미인데 한미 FTA 이행만 제대로 해도 무역적자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며 “미국 기존 무역협정들의 무역적자 원인을 심층분석한 보고서가 6월에 나오는데 미국의 구체적인 입장도 그다음에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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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하나는 기존 한미 FTA의 이행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이 경우 미국이 원산지 검증 방법을 더 까다롭게 하거나 개방이 덜 된 법률 등 서비스 시장의 개방도를 높이라는 주문을 내놓을 수 있다.

두 번째는 미국이 탈퇴를 선언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수준까지 한미 FTA의 개방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TPP는 정부의 직접지분이 50% 이상이거나 소유지분을 통해 50% 이상의 투표권을 통제하는 국영기업을 공표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 지원을 받는 국영기업이 해외에서 수주활동을 통해 다른 회원국 기업에 피해를 주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다. 쌀 관세화나 소고기 수입 등 농축산물 수입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의 사례에 비춰보면 설사 재협상이 이뤄지더라도 나쁠 게 없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에 보낸 나프타 재협상 의향서를 보면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한다는 게 아니라 TPP의 내용이 다 들어가 있다”며 “개정이나 재협상을 통해 한미 FTA도 TPP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된다고 하면 이미 TPP 참여를 결정하면서 준비를 다 끝내놓은 만큼 크게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준비만 잘하면 도리어 기존 한미 FTA에서 우리나라에 불리한 조항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세이프가드 조항, 환경 관련 규제 적용을 막는 조항,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조항 등 기존 협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미 FTA에 대한 미국의 최종 입장이 정해지더라도 한미 간에 협상 테이블이 열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안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나프타 재협상인데 통상절차법 등을 감안하면 협상이 올해 하반기나 내년으로 넘어가고 그 이후에 미국 행정부도 의회로부터 협상권한을 받을 수 있다”며 “우리도 나프타 재협상 진행 과정을 보면서 차분히 대응하면 된다”고 말했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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