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남녀’가 종영되고 다음날인 2016년 10월26일 드라마가 전해주는 여운에 벗어나기도 전에 비보가 들려왔다. 조연출로 일하던 故 이한빛 PD가 삶이 아닌 죽음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우리시대의 20대 청춘 이 PD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을까.
고 이한빛 PD의 사연이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지난 17일 故 이한빛 PD의 동생 이한솔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즐거움의 ‘끝’이 없는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대기업 CJ, 그들이 사원의 ‘죽음’을 대하는 방식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부터였다.
이한솔 씨는 글을 통해 6개월 전 스스로 눈을 감은 고 이한빛 PD가 왜 죽음으로 내몰렸는지에 대해 언급하면서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과도한 모욕과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살고 싶었던 이한빛 PD는 드라마 현장이 본연의 목적처럼 사람에게 따뜻하길 바라며,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이한솔 씨의 글은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고, 이후 청년유니온,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등 17개 시민사회단체로 꾸려진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로 18일 기자회견을 진행하면서 CJ E&M의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유가족이 CJ E&M에 가장 바라는 건 진정한 사과였다. 죽음 이후 유가족이 세상에 알리기까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린 이유 중 하나로, 이한빛 PD의 장례식 이후 사건의 진상을 알고자 했던 유가족 측은 CJ E&M과 면담을 진행해 왔었다. 이를 통해 진상 규명에 협조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유가족 측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등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고, 결국 세상에 알리기로 한 것이었다.
처음 유가족의 기자간담회에도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공식입장을 발표하기 꺼렸했던 CJ E&M 측은 결국 반나절 만에 이한빛 PD의 사망에 애도를 표하며 “당사 및 임직원들은 경찰과 공적인 관련 기관 등이 조사에 나선다면 적극 임할 것이며, 조사결과를 수용하고 지적된 문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등 책임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혼술남녀’ 이한빛 PD의 사망 소식이 대중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 이유는 바로 드라마가 노량진을 배경으로 저마다 막막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그려내며, 술 한 잔의 작은 위로를 전해주던 드라마였다는 사실이었다. 빽이 없어, 열심히 발버둥 치는데도 늘 제자리인 ‘혼술남녀’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브라운관 밖 시청자들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랬던 ‘혼술남녀’였기에 드라마를 기억하는 이들은 이한빛 PD의 사망 소식에 더욱 씁쓸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시청자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같이 공감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혼술남녀’ 그 자체는 자신과 정 반대의 위치에 있었다는 진실을 알게 되면서 또 다른 배신감까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기자간담회를 통해 드라마 제작 환경의 열악한 현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55일 동안 이한빛 PD가 쉰 날은 이틀에 불과했을 정도이며, 이 외의 모욕적인 언행과 인사 불이익 등도 늘 뒤따라 왔었다. 심지어 종영직전 갑작스럽게 사라진 직원을 걱정하기보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들을 찾기 위해 회사로 찾아간 이한빛 PD 부모님에게 그가 얼마나 불성실한 직원인지 한 시간 가량 설교를 늘어놓기까지 했다.
‘혼술남녀’는 청춘을 위로를 그렸지만, 정작 이를 만드는 제작환경은 청춘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어쩌면 정말로 CJ E&M가 주장한 것처럼 현장에서 이한빛 PD의 태도가 불성실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변명도 개인에게 상식 이상의 과도한 업무를 주었다는 것과 한 생명을 죽으로 몰고 갔다는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가족이 왔을 때 정말로 해야 했던 것은 설교가 아닌 사과였다.
아무리 드라마와 현실은 다르다고 하지만, 뒤늦게 알려진 ‘혼술남녀’ 제작환경의 민낯은 믿었던 시청자들의 발등에 도끼를 찍어놓았다. ‘혼술남녀’가 남긴 현실의 씁쓸한 그림자는 한동안 지워지지 않은 채 길게 늘어질 듯 보인다.
/서경스타 금빛나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