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미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이 북한 여행을 금지하는 등 압박 강도를 높이자 트럼프 정부가 대북 정책인 ‘압박과 개입의 극대화(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를 실행할 타이밍으로 보고 그간 의회의 촉구에도 미뤄뒀던 테러지원국 재지정 옵션을 꺼내 들었다는 것이다. 대북 군사조치를 최대한 후순위에 두면서 정치·외교적 제재로는 북측에 가장 타격이 큰 카드를 뽑아든 셈이다.
출범 후 북한에 전방위적 개입을 장담해온 미 행정부가 결국 이 같은 초강수를 빼 든 것은 ‘선제공격’ 등 군사조치를 제외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뜻도 된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과거와 다른 입장에서 북한에 개입하고 압박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해 테러지원국 재지정 추진이 단발성 조치가 아닌 연쇄제재의 신호탄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 때문에 6차 핵실험 준비를 마친 북한이 미중의 우려대로 오는 25일 인민군 창건 기념일 전후로 핵실험 및 추가 미사일 발사 등을 강행할 경우 미국이 테러지원국 재지정에 나서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9년 만에 국제사회에서 ‘테러리스트 국가’로 낙인 찍히며 가뜩이나 경색된 무역 및 해외 인력 파견의 문이 더욱 좁아지게 된다. 미 국무부는 지난 2월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김정은 위원장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 사건을 테러지원국 재지정 이유 중 하나로 상정하며 김정은 정권에 부담을 가중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북핵 문제에 미온적이었던 중국이 최근 ‘역할’을 하고 있다는 판단이 선 점도 미국이 행동에 나선 배경이다. 미국은 줄곧 국제사회의 동반 제재를 통해 북한을 제재하기를 원한다고 말해왔고 중국이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각종 무역 제재로 상응할 것임을 시사해왔다. 미 행정부가 중국을 향해 더욱 강력하게 북한 옥죄기에 나서라고 요구하는 상황에서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릴 경우 중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 북한과의 교류와 접촉을 중단하라는 더욱 분명한 신호가 될 수 있다.
차제에 미 측은 각종 대북 제재를 통해 북한에 핵 포기를 한층 단호하게 압박할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이날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지난 25년간 북한과 협상은 모두 엄청난 실패였다”며 “북한의 전면적인 핵 포기가 없는 한 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펜스 부통령은 “경제·외교적 압력으로 북한이 핵 야심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핵 포기가 추가 경제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핵심 카드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이와 관련, 미 재무부는 북한 기업과 개인들에 대한 추가 제재를 준비하고 있고 국무부도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실시하면 중국 등과 협의해 석유공급 중단과 금융거래 전면 금지 등의 제재 강화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