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와 사회계약을 규정하는 지원정책이 있어야만 기술이 사회에 성공적으로 스며들 수 있습니다.”
전 세계 로봇 기술을 이끌고 있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 과학 및 인공지능연구소(CSAIL) 최초의 여성 소장인 다니엘라 러스(사진) 교수는 2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정책과 기술 양쪽을 다 알아야 법·규제, 인프라, 인센티브 등의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기술을 이해하는 정부 지도자와 정책을 이해하는 기술자들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러스 소장은 서울경제신문이 ‘The Next Korea:Soft Infra for Next Engine(미래 한국:차세대 성장엔진을 위한 소프트 인프라)’을 주제로 다음달 23~25일 개최하는 ‘서울포럼 2017’에서 기조강연을 할 예정이다. 그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선정한 ‘커리어 어워드’와 ‘앨프리드 슬론 펠로십’ 등을 수상한 인공지능(AI) 분야 최고의 석학이다.
러스 소장은 “인공지능은 추론·예측·개선을 위한 연역적 혹은 데이터 기반 모델 그리고 개인화(personalization)를 통해 산업 전반에 걸쳐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할 것”이라며 “다만 효과적인 해답과 해결책은 정책적 측면과 기술 측면을 모두 이해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러스 소장은 일자리 감소, 개인정보 유출 등 AI 기술을 둘러싼 비관론에 대해 “우리는 기술이 세상의 모습을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며 “기계가 현재의 일자리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과학이 더 발전돼야 하며 젊은 세대도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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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 소장이 이끄는 AI연구소는 정원을 가꾸거나 춤을 추고 쿠키를 굽는 등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는 로봇들을 여러 차례 개발해 선보였다. AI 연구의 중심지에서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인간의 일상을 따라 하는 로봇을 거듭 개발한 이유는 따로 있다. 러스 소장의 관심 분야는 개별 로봇보다 로봇 집합체, 즉 시스템이다. 로봇공학과 모바일컴퓨팅·프로그래밍 등 분야별 전문성을 바탕으로 러스 소장은 로봇들이 어떻게 협력하고 상호작용하는지, 인간사회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연구성과를 내고 있다.
러스 소장은 지난 1월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회보(PNAS)’에 소개한 AI 알고리즘 기반의 ‘택시 풀(합승)’ 시스템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이 연구는 실시간으로 수천개의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실시간 최적화 알고리즘’을 뉴욕시에 가상 적용하며 주목받았다. 알고리즘 개발을 위해 러스 소장과 연구진은 뉴욕 시내 택시 탑승정보 300만건을 분석했다. 연구에 따르면 ‘실시간 최적화 알고리즘’을 적용할 경우 뉴욕 택시 수를 75% 줄여도 승객 대기시간은 3분 이내로 줄어들고 택시 운전사는 현재보다 적은 거리를 운행하고도 현 수준의 임금을 유지할 수 있다. 러스 소장은 “실시간 최적화 알고리즘을 통해 4인승 택시 3,000대 만으로 현재(1만4,000대 운행 중)의 98%까지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며 “이러한 카풀 서비스 개발, 적용은 새로운 유형의 직업을 창출해내고 환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자율주행차가 열어줄 이동성 혁명 역시 러스 소장의 주요 연구 분야다. 그는 “운전 경험의 안전성과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최고의 기술적 과제”라며 “MIT AI연구소, 도요타 그리고 다른 기관들의 연구는 자동차를 보다 안전하고 똑똑하게 만들어 다음 세기에 수천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고 강조했다.
다만 러스 소장은 공공도로에서 자율주행 5단계에 도달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기술을 받아들여야 하는 소프트 인프라, 즉 사회 시스템 때문이다. 5단계 자율운행은 사람이 운전에 관여하지 않는 전면 무인차로 포드는 오는 2021년까지, 테슬라는 2018년까지 5단계 자율주행차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는 “자율주행 5단계에 도달하기 전에 중요한 기술 및 정책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현재 해결해야 할 기술적 과제로는 교통체증, 눈이나 폭우와 같은 날씨, 인간의 몸짓과 신호에 대한 반응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러스 소장이 꼽은 자율주행 관련 정책 이슈는 △자율주행차 규제의 필요성 △규제 수준 △안전성 테스트의 방법론 △도로 유형별 차량 허가 여부 등 기초적인 규제에 대한 합의사항부터 국가별·산업별 제도 통합 등까지 산적해 있다. 이 같은 문제는 자율주행차 부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게 러스 소장의 지적이다.
급격한 AI 기술 발전에 따른 사회 시스템 변화와 부작용에 대한 우려에 대해 러스 소장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그는 “자동화된 자동차와 로봇 조립라인에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며 “중요한 점은 기계와 인간이 함께 작업하면 인간이나 기계가 단독으로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스 소장은 가장 먼저 AI와 인간의 협력을 꾀할 수 있는 분야로 의료·법조를 꼽았다. 그는 “기계가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대용량 데이터 소스에서 정보를 읽고 종합하는 능력은 의료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 데이터(a body of data)로 시작해 데이터를 설명하는 규칙이나 절차를 도출하거나 향후 데이터를 예측하는 프로세스를 일컫는 머신러닝이 AI 발전의 핵심과제로 꼽히는 이유다. 의료 영역만 봐도 현재 기술로는 AI 단독활용이 더 효과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러스 교수는 “새로운 인공지능 기반 방식을 사용해 암 진단을 목적으로 림프절세포의 이미지를 판독하면 AI의 오류율은 7.5%로 인간 병리학자의 오류율(3.5%)보다 2배 이상 높다”며 “그러나 AI 시스템과 병리학자가 함께 데이터를 검토할 때는 오류율이 0.5%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의료 서비스 질을 높이는 데서도 인간 의료진과 AI 간 협력이 획기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가령 경증 질병 치료가 주를 이루는 농촌 지역 의사들을 포함해 모든 의사가 AI 시스템을 활용한다면 의사들은 새로운 연구와 임상시험 검토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특히 AI 시스템과 인간 의사의 진단·치료가 병행된다면 의사는 빅데이터로 수집한 지식을 바탕으로 환자에게 최첨단의 맞춤형 진단과 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때 러스 소장이 강조하는 기술은 ‘자연언어 이해(natural language understanding)’다. 그는 “AI가 자연어를 이해하면 모든 의사가 AI 시스템을 배우지 않고도 환자에게 유익한 최신 연구와 임상시험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대용량 데이터 소스에서 정보를 읽고 종합하는 것이 필요한 의료산업이나 기타 여러 산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인간과 AI 간 협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또 다른 영역은 법조계 전문직이다. 러스 소장은 “워드 프로세싱 인터넷과 전자메일은 문서 초안 작성, 정보 접근 및 정보 공유에서 혁명을 일으켰고 법률 업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며 “차세대 기술인 자연언어 처리를 통해 AI가 텍스트를 해석하고 판결을 예측하면 인간 변호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패턴과 상관관계를 찾고 결과를 예측하거나 오류를 제거하는 역할만으로도 변호사 업무 형태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