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정책

연기금이 테러자금 아닌지 실사하라고?...속타는 운용사

자금세탁방지제 시행에 곤혹

자산운용사 비대면 거래 많아

"실정 안맞고 업무중복" 지적

돈세탁이나 테러 자금 조달 등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사가 거래 당사자나 자금의 성격을 파악하도록 한 자금세탁방지제도가 되레 자산운용사에 엉뚱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주로 은행·증권사 등 중간 판매사를 통하는 비대면 거래가 많은 자산운용사가 직접 거래자의 불법 가능성 여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규정대로라면 ‘연기금이 돈세탁과 테러 자금 조달을 하는 부정한 집단인지’ 여부를 자산운용사가 직접 실사 등으로 파악해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한다.

24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현행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정금융정보법)’에 근거해 시행되고 있는 자금세탁방지제도는 일반·특수 은행이나 제2금융권을 비롯해 증권사·자산운용사 등 국내에서 영업을 하는 금융사에 모두 적용된다. 각 금융사는 금융 거래자가 불법 재산을 활용한다거나 자금세탁·공중협박(테러) 자금 조달 행위를 하고 있다고 의심되면 이를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제도를 자산운용사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자본시장법상 자산운용사는 위탁자와 수탁자(자산운용사) 사이에 판매사가 끼어 있다. 위탁자가 실제 돈의 소유자인지 불법 자금은 아닌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또 이미 판매사인 은행·증권사 등이 파악한 터라 중복 업무다.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대고객 접점이 적은 자산운용사에도 규제를 적용해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정금융정보법에 의해 자금세탁방지제 전담 직원과 내부 보고 체계, 교육 및 연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은 금융당국이 자산운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유인수 이스트스프링 자산운용 부사장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해 자금세탁방지 규정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업계의 실정에 맞게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가 투자일임 계약을 맺은 후 대면 거래가 발생하면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다. 실례로 국민연금이 위탁자라면 자산운용사가 실사를 통해 국민연금이 돈세탁을 하는지, 테러 자금을 운영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성원 트러스톤자산운용 부사장은 “규정대로 한다고 해도 자산운용사가 일일이 연기금에 찾아가 실체와 현황을 알아내 신고해야 하는데 이는 지나친 행정편의주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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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자금세탁방지제도 시행 주체인 FIU 측은 원칙론만 내세운다. FIU 관계자는 “사모펀드의 경우 직접 판매가 가능한 이상 자산운용사도 기본 의무를 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관투자가의 신원을 입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산운용사 측이 오해한 것”이라면서도 “애로사항이 있으면 충분히 듣겠다”고 했다.

특정금융정보법이 규정 위반을 엄격히 처벌하고 있어 업계의 불안감은 매우 높다. 금융사의 경우 최대 기관조치를, 금융사 임직원은 해임권고, 또는 면직처리 받거나 과태료를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신고할 때는 합당한 근거를 밝혀야 하는 일종의 ‘입증책임’을 지는데 신고 내용이 거짓이어도 1년 이하의 징역을 받거나 벌금 1,000만원을 내야 한다. 특히 올해부터는 금융사 내부통제시스템 강화 기조에 따라 금융당국의 이행 검사가 본격화한다. 이 부사장은 “자산운용사는 앉아서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라며 “외국계 자산운용사도 금융당국에 관련 사항을 계속 건의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조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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