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과 9월, 두 야당은 이례적으로 자체 세법 개정안을 냈다. 각론의 차이는 있지만 기업에 대한 법인세율 인상,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강화가 골자였다.
개정안은 정부에도 전달됐다. 세금을 올려야 할 것들과 이에 따른 세수 추계 등이 자세히 기록돼 공들인 흔적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유독 간단하게 기록돼 있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고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기억했다. 근로소득세 면세자를 줄이는 부문이었다. 그는 “A당의 경우 딱 한 줄이 기록돼 있었는데 ‘정부와 협의’였다”고 말했다. B당은 그래도 연 소득 2,500만원 이상 근로소득자의 특별세액공제 종합한도를 90%로 설정해 면세자 비율을 줄이자는 내용을 제시했다. 정부가 2년 전에 국회에 제출한 근로소득세 면세자를 줄이기 위한 네 가지 방안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반영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 2015년에 근로소득자 810만명이 소득이 있는데도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면세자를 줄이는 네 가지 방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에서 밀도 있는 논의를 통해 해법을 찾아보자는 취지에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세금을 내는 근로자 수가 현재보다 최소 60만~320만명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비록 과세 금액은 수천억원에 불과하지만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을 세운다는 측면에서 매우 필요하다고 봤다. 하지만 방안은 제출로 끝났다. 정부의 바람과는 달리 국회에서의 밀도 있는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선 국면에 접어든 지금, 여론조사 1·2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세제 관련 공약을 내고 있다. 역시 명목 혹은 실질 법인세율 인상,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강화 등이 주를 이룬다. 부자 증세는 표를 얻기 쉽고 ‘공평 과세’의 인상을 강하게 줘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더욱이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10만원 지급 등 복지 공약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많게는 연간 40조원가량의 재원이 필요한데 증세를 통해 일부분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46.8%에 이르는 근로소득자 면세자 비율 축소에 대한 내용은 여전히 두루뭉술하다. 국민의당은 2,000만원 이상에 대해 1%의 최저한세율을 도입하겠다는 방안을 냈다. 다만 “면세자 축소가 바람직하다는 이론적 근거도 없지만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다”고 했다. 자칫하다 ‘근로자 증세’ 파문이 커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민주당은 이에 대한 방안이 아예 없다. 많게는 320만명의 표심을 흔들 수 있다는 걱정이 깔린 조치로 풀이된다.
표심을 의식한 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카드는 이번에도 꺼내지 않았고 있다. 부과하기 쉬운 증권거래세만 있을 뿐 차익에 세금을 매기지 못한 곳은 주요 국가 가운데 한국뿐이다. 매출 4,800만원 미만 자영업자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간이과세제도’는 또 어떨까. 정부의 한 관계자는 “세원 확보와 조세정의를 위해 기준을 낮춰도 모자랄 판에 이를 더 높이려고만 하고 있다”고 했다. 국회에는 기준을 8,000만~1억원으로 올리는 법안 3건이 발의돼 있는 상태다.
“소득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세금을 내 복지가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라는 인식이 생겨야 한다.” 야당이 밝힌 원칙이다. 소득이 있으면 단돈 1,000원이라도 세금을 내고 떳떳하게 권리 차원에서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세금 체계는 설득력이 있을 때 공평하다. 하지만 면세자 이슈는 놔둔 채 부자 증세만 외칠 때 ‘공평’은 과연 공감을 받을 수 있을까. 더욱이 공감을 잃은 급진적인 변화는 부작용만 낳고 결국 실패했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fusionc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