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주한미군이 경북 성주에 배치한 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관련 비용 10억달러(약 1조1,350억원)를 “한국이 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히며 우리 정부와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재협상을 하거나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폭탄 발언은 내년 방위비 분담 협상과 FTA 재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특유의 협상전략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열흘 앞으로 다가온 대선 판세를 뒤흔드는 큰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이틀 앞두고 27일(현지시간)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 26일 배치된 사드에 대해 “사드는 10억달러 규모의 시스템”이라며 “한국이 비용을 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한국 측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한미 FTA에 대해서는 지난해 대선 경쟁자였던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만든 “수용할 수 없는 끔찍한 협정”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한미 FTA로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한미 FTA를 “재협상하거나 폐기(terminate)할 것”이라면서 재협상 시점을 “곧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한미 FTA를 ‘개선(reform)’ 또는 ‘재검토(review)’하겠다고 언급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재협상(renegotiate)’ 을 분명히 못 박는 데서 나아가 협정 종료까지 언급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이번 발언을 상대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특유의 협상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극단적인 발언을 내질러 상대의 공포를 유발한 뒤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것은 그가 취임 후 3개월여 동안 꾸준히 구사해온 전략이다. 미치광이 같은 예측불허의 극단적 발언으로 상대의 기선을 제압해 협상을 주도하는 일명 ‘미치광이 이론(the Madman Theory)’이다.
갑작스럽게 뒤통수를 맞은 정부는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이 가하는 맹공의 타깃이 됐다는 점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특히 사드 배치비용 전가 발언은 열흘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하며 정치권에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어 주목된다. 외교부는 “미국으로부터 (비용 부담) 관련 사실을 통보받은 바 없다”며 “우리 정부가 부지·기반시설 등을 제공하고 사드 체계의 전개 및 운영 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는 합의 내용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배경과 진위를 우선 확인하고 어떻게 대응해나갈지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