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한반도 ‘4월 위기설’은 간신히 넘겼으나 긴장 고조 국면이 여전해 오는 5월10일 출범하는 차기 정권은 한반도 문제가 강대국에 의해 좌우되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를 해결하고 평화 체제 구축에 나서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됐다.
북한은 미국의 강력한 경고에도 의도적이든, 미국 전파교란에 의한 것이든 실패하기는 했지만 4월5·16·29일에 탄도미사일 실험을 하며 언제든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에 나설 태세다. 중국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화풀이한다’고 지난해 말부터 한국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경제보복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마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거듭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 사드 비용의 한국 부담을 주장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개정 공세를 펴고 있다. 일본은 북핵 도발을 빌미로 미국과 찰떡궁합이 돼 전쟁 가능 국가로의 개헌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5년 9월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 ‘천안문 망루 외교’를 펴다가 미국의 강한 의구심을 사자 곧바로 다음달 미국에서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중국을 자극한 데 이어 사드 배치 강행에 나서고 개성공단까지 폐쇄하는 등 ‘널뛰기 외교’로 운신의 폭을 좁힌 결과다.
美 ‘고강도 압박→협상’ 의지
위기 커지지만 기회 될수도
차기 정권이 한반도 평화 유지→평화 구축→평화 통일이라는 국익을 관철하기 위해 초강대국인 미국에 대한 외교 역량을 모으고 한중 공조를 복원하는 과제 등이 산적하다. 국제정치 대가인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반도 문제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이 자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북한 핵·ICBM의 완성을 막기 위해 ‘최대 압박과 개입(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 정책에 나서는 것은 적극적인 현상타파 의지를 뜻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우리가 능동적으로 역할을 하며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중간 수준의 압박을 통해 북 체제 붕괴를 기다리는 비현실적 정책이라 보고 고강도 봉쇄에 이은 협상 가능성을 통해 북 핵·미사일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에 주목하라는 게 임 명예교수의 조언이다. 실제 미국과 북한 간 강대강 대치 국면으로 안보 불안이 커질 수 있지만 동시에 북 핵·미사일 문제가 미봉책에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첫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졌던 2000년, 비록 조지 W 부시 당선으로 물거품이 되기는 했지만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과 보조를 맞춰 북한과 핵 폐기를 전제한 동결 상태에서 체제 안전 보장과 관계 정상화라는 일괄타결(Package deal·패키지딜) 성사 직전까지 갔던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게 필요하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1994년 영변 핵 시설 선제 타격설이 돌 때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100만명의 희생이 따를 것으로 분석했다”며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해야 하며 대결 국면이 장기화하면 우리가 잃을 게 너무나 많다”고 지적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클린턴과 부시·오바마 전 대통령이 북한을 다루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북 핵·미사일의 고도화와 경량화가 이뤄졌던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더 강경하게 북한을 다룰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이미 전방위적 고강도 대북압박으로 제6차 북한 핵 실험을 유예시키고 주한미군 사드 배치를 단행해 중국·북한 견제에 나서고 중국에는 경제보복 카드를 쓰지 않는 조건으로 대북봉쇄 ‘역할론’을 넘어 ‘대행론’을 맡겼고 일본은 아예 말 잘 듣는 ‘미국의 푸들’로 만들었다. 한국에는 이치에 맞지 않게 10억달러 사드 비용을 거듭 요구하며 전략무기 한반도 출동 비용이나 한미 FTA 재개정 협상,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협상(올해 9,507억원)의 유리한 고지 선점에 나섰다.
美 셰일가스 수입 등 늘리고
中엔 사드보복 철회 요구
北에도 6자회담 타진 등
국제 협상력 키우기 나서야
한반도 문제의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푸는 열쇠를 쥐고 있고 안보·경제 문제에서 핵심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신속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간에 미국과 중국에 특사를 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만 미중 간 사드 배치와 북 핵·미사일 해법을 놓고 물밑 힘겨루기가 지속되고 북중 간에도 미묘한 긴장관계가 흐르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미국에는 △타국 대비 높은 한국의 무기 수입,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북공조 동참과 전쟁 반대 △중국 사드 보복 철회를 위한 미국의 적극적 역할 △미국 셰일가스와 자동차 등 수입 확대와 서비스 시장 개방 △북 도발 동결 조건으로 6자회담과 북미 회담 모색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과 우선 협의를 강조하며 협조를 구해야 한다. 중국 특사를 통해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 지지 △중국의 대북압박·대화 투트랙 찬성 △사드 배치 협의 부족 유감 △부당한 사드 보복 철회 △경제협력 확대 방침을 밝히고 호혜 관계로의 전환을 촉구해야 한다. 또한 북한에도 △핵·미사일 도발 불용 △의약품 등 인도적 지원 재개 △국제 공조와 남북 대화 병행 △북 핵·미사일 동결과 폐기를 전제한 6자회담과 북미 회담 중재 의사를 전달하며 국제 협상력을 키워야 한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일본 등은 사활을 걸고 입체적으로 로비를 하는데 우리는 워싱턴 주류사회의 관심 대상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며 “초강대국이자 한미 상호방위조약 대상인 미국과 진지한 대화를 하며 북핵을 통 크게 풀 수 있도록 공조하고 북한과도 인도적 지원과 협상을 병행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임 명예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질서의 새 판을 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한중일이 떠맡도록 할 가능성이 크지만 평화를 위한 비용은 투자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