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언행으로 ‘아시아의 트럼프’로 불리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광폭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1일 필리핀 일간 필리핀스타는 지난달 말 필리핀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이 중국에 힘을 실어주며 중국이 최대 수혜국이 됐다고 보도했다. 정상회의 이후 나온 의장성명에서 친중 행보로 돌아선 의장국 필리핀의 반대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무력화한 국제중재 판결이나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 등 군사기지화 문제가 전혀 거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중국해 인공섬과 군사기지화 문제는 지난해 9월 라오스가 주재한 아세안 정상회의 의장성명에도 담긴 핵심 이슈였다. 애초 의장성명 초안에는 남중국해 영유권 국제중재 판결과 관련해 ‘법적·외교적 절차를 완전히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는 문구가 담겼으나 최종 성명에서 제외된 것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정상회의 이전부터 “국제중재 판결을 거론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등 중국을 배려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는 정상회의가 끝난 후 기자회견을 열어 이달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 정상회의에 참석했을 때 필리핀 경제개발을 위해 더 많은 중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줄곧 전통 우방인 미국에 등을 돌리고 중국과의 경제·방위 협력에 박차를 가했던 두테르테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중국에 손을 내민 것이다. 두테르테의 이 같은 친중 행보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영향력 억제를 최우선 정책으로 설정 중인 미국에는 큰 구멍이 뚫렸음을 의미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급기야 두테르테 대통령을 미국에 초대하기로 했다. 백악관은 4월2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과 두테르테 대통령이 북한 문제와 마약과의 전쟁 등을 주제로 이날 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매우 우호적인 대화였다”며 “양국 정상은 북한의 위협을 포함한 아세안 지역 안보에 대해 우려했으며 필리핀 정부가 국가의 골칫거리였던 마약과의 전쟁에 나선 것을 두고도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이날 백악관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방미 시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다른 아시아 국가를 찾는 가운데 필리핀 방문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