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5월 4일, 미국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 노동자 3,000여 명이 집회에 나섰다. 나흘째 이어진 이날의 집회는 어느 때보다 긴장이 흘렀다. 바로 전날인 3일, 트랙터 공장 앞에서 경찰의 발포로 여자와 어린아이를 포함해 4~6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였기 때문이다. 경찰의 발포에 겁먹었는지 시위대 숫자는 이전보다 줄었어도 규탄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다행히 우려했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침 비까지 내려 시위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대부분 돌아간 상황. 시간은 밤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카터 해리슨 시카고 시장은 집회가 평화적이었다고 선언하고 귀가했다. 경찰은 시장에게 집회를 평화적으로 마무리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광장에 남았던 노동자들은 약 300여 명. 경찰 지휘자들은 176명의 경찰들에게 광장에 진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경찰 한 명이 ‘일리노이주 경찰의 이름으로 평화롭게 해산할 것을 명령한다’고 소리친 다음, 경찰 병력은 곤봉으로 노동자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얼마 안 지나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경찰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
쾅!’ 폭음과 함께 시위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경찰 1명이 바로 죽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흥분한 경찰은 좁은 공간에서 총을 마구 갈겼다. 무차별 총격으로 10여 명이 죽고 130여 명 이상이 부상당했는데, 절반은 경찰이었다. 경찰 6명이 동료가 난사한 총에 맞아 죽고 60명이 다쳤다. 노동자들도 4명이 죽고 7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찰은 흩어지는 군중을 추적해 100명 이상을 잡아들였다. 미국 노동운동사에서 최악의 참사 중 하나로 꼽히는 헤이마켓 사건은 누가 일으켰을까.
참사 직후 시카고 일대에서는 검거 선풍이 불었다. 폭탄 투척의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은 노조 지도자와 무정부주의자 8명. ‘경찰 살해에 공모했다’는 혐의가 적용된 이들은 7명이 교수형, 한 명은 종신형 판결을 받았다. 헤이마켓 사건 재판은 미국은 물론 국제적 관심을 불렀다.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러시아,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청원과 비난이 빗발쳤다. 무리가 많았던 탓이다. 광장에 없었는데도 ‘평소에 노동 운동에 관심이 많았으며 폭탄 제조법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돼 교수형을 언도받은 사람도 있었다.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 저항사’에 따르면 런던에서 헤이마켓 재판 항의 집회에 참석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세상이 죄 없는 8명의 인민을 잃어야 한다면, 그보다 오히려 일리노이 대법원의 8명 배심원을 잃어버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라며 비판했으나 소용없었다. 재판 1년 뒤 3명이 교수형 틀에 매달렸다. 한 명은 사형 집행을 앞두고 자살을 택했다. 이들의 장례 행렬에는 수만 명이 뒤를 따랐다. 재판과 사형 집행, 언론의 추적 끝에 몇 가지 새로운 사실도 나왔다.
노조와 무정부주의자 그룹 내에 경찰의 프락치가 있었고 노조 와해를 위해 과격 시위를 유도하려 했다는 점, 심지어 폭발물을 투척할 사람을 물색했으며 자본가들이 이를 지원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그러나 정황과 설만 무성할 뿐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진실 규명은 한계에 봉착한 가운데 나머지 관련자들은 사형 집행 하루 전에 일리노이주 지사에 의해 종신형으로 감형됐다. 처형되지 않은 3명은 훗날 특사로 풀려났으나 사건의 진상은 여전히 영구미제로 남아 있다.
누가 어떤 목적에서 폭탄을 던졌는지는 미스터리의 영역이지만 확실한 사실은 있다. 폭탄의 덕을 가장 많이 본 계층은 자본가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노동운동이 약해졌다. 헤이마켓 광장에서 폭탄이 터질 무렵 미국 전역에서 35만여 명이 모였던 노동조건 개선 요구 집회가 갑자기 사라졌다. 주요 언론은 과격한 노동 운동을 성토하고 각주의 경찰은 노조 지도자들을 체포, 구금하거나 공공연히 감시를 붙였다. 회원 수 70만 명을 자랑하던 ‘노동기사단’ 조직도 국가전복세력으로 찍혔다. 미국판 ‘공안정국’ 속에서 노동운동의 흐름도 백인 숙련공들의 이익과 타협을 중시하는 ‘미국 노동총연맹(AFL)’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세계가 공유하는 노동절(5월 1일, May Day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자의 날)의 기원이기도 한 헤이마켓 사건 131주년. 과연 무엇이 진상이고 누가 범인일까. 악마가 연기 속에 숨어 역사를 비웃는 것 같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