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대·중소기업 격차 어떻게 풀 것인가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수탁中企, 대기업 의존도 80%대

전속거래 관행이 양극화 심화시켜

정부 중장기 산업비전·전략 제시

공정거래 확립 상생 생태계 조성을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 /서울경제DB


흔히들 우리 중소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두고 ‘9988’이라는 숫자를 사용한다. 전체 기업 수의 99%, 고용인원의 88%를 차지한다는 의미다. 지난 2014년에 국내 제조업체 중 대기업 수의 비중은 0.18%에 불과했으며 제조 중견기업까지 합쳐도 0.52%에 그쳤다. 그러나 대기업이 제조업 총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7%를 기록했다. 왜 이런 상황이 나타나고 있을까. 그 원인 중 하나는 국내 대기업이 선호하는 전속거래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국내 기업 간 거래는 전속거래와 수위탁거래가 절반을 넘고 있다. 국내 제조 대기업들은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공급망의 안정과 효율화를 위해 계열화를 추진하면서 협력업체들과 전속거래를 추진해왔다. 과거 선진국 기업들도 경영 효율성 제고를 위해 전속거래를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2015년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세계 경제사학회에서 외국 학자들은 유럽과 미국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된 전속거래를 아직도 한국 대기업들이 실시하고 있느냐고 반문해왔다. 전속거래는 협력업체의 투자위험을 낮출 수는 있으나, 원가·납기·생산물량과 설계 등의 의사결정을 대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협력업체의 총요소생산성을 떨어뜨려 성장 잠재력을 잠식하는 양날의 칼로 작용해왔기 때문이다.


2015년 기준으로 국내 기업 간 거래유형을 분석해보면 위탁기업 비중은 1.1%에 불과한데 수탁기업 비중은 47.3%를 기록했으며, 수탁기업들의 위탁 기업의존도는 83.7%에 달했다. 나머지 51.6%의 기업은 수위탁거래가 없는 단기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영세기업들이다. 같은 해 국내 39만7,171개의 제조업체 중 전속거래 기업 수는 1차 협력업체가 1만5,000여개, 2차 협력업체가 3,000여개로 추정된다. 전체 제조업체의 4.6%에 해당하며, 대기업이 650개사, 중소기업이 1만7,350개사로 추정된다. 광의의 범위로 볼 때 전속거래 업체들은 수위탁거래 기업에 포함되며, 전속거래 기업이 국내 제조업 거래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9월 일본 통상산업성은 아직도 전속거래로 인한 일본 자동차업계의 납품가격 인하가 협력업체의 수익률 저하, 비정규직 양산, 임금 하락과 연구개발(R&D) 투자 부진을 초래해 산업 경쟁력을 저하시킨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결과는 독일 롤랜드버거가 분석한 우량 협력업체 평균 수익률에서 일본 협력업체들이 6.3%로 미국·유럽·중국보다도 낮은 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관련기사



최근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구조 개편론이 대두되고 있다. 국내 기업 간 거래의 특징인 전속거래와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산업은 특정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의 집합체다. 산업을 제대로 분석하려면 기업단위의 미시적인 분석은 필수다. 따라서 기업과 산업을 분리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산업은 혁신제품을 보유한 기업들이 성장하면서 기업생태계를 조성하고, 관련 창업의 활성화와 정부·대기업이 성장사다리를 마련해줌으로써 공생의 산업생태계로 발전하게 된다. 여기서 정부의 역할은 기업 단독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중장기 산업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고, 산학관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다.

얼마 전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정책부는 거래 대금의 적기 지급을 강조하면서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 질서확립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공정거래 감독을 강화하면서 산업통상자원부와 관련 부처가 비효율성이 드러나고 있는 전속거래의 시정과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동반성장이 화두가 되는 가운데 대중소기업 간 격차 문제를 단기간 내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중소기업이라는 나무만 보고 산업이라는 숲을 보지 못한다면 네트워크 협력이 강조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 기업의 경쟁력은 강화되기보다는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