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의 권력욕과 욕망이 잘못된 길로 내달리는 후반에서 등장하는 장면이다. 변종구(최민식 분)는 권력욕에 맛을 들이게 된 후 초심을 잃고 권력욕의 정점에 다다르게 된다. 고기 쌈은 그의 또 다
른 무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를 두고 박인제 감독은 “탐욕스런 악마가 되가는 변종구가 관객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지점이다”고 설명했다.
“그 장면의 강렬함 외에도 주제랑 관통하는 이야기를 하자면, 관객들에게 ‘이런 악마를 그냥 내버려둘래?’ 라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어떤 관객들은 보다 통쾌하게 변종구를 응징하길 바랐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전통적인 상업 영화의 방식을 따라가고 싶진 않았어요. 제가 의도했던 건 박경의 미래를 현실화시켜서, 관객들에게 유권자의 권리를 어떻게 행사 할 것인지에 대한 거리를 던져주고자 했어요.”
이는 최민식이 서울경제스타와의 인터뷰에서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판단 기준의 모호함을 명확하게 정립할 수 있었으면 해요. 적어도 제가 연기한 변종구 같은 ‘놈’이 정치인이 되면 안 되잖아요.”라고 말했던 것과 통하는 지점이다.
개봉 6일째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5월 극장가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특별시민’은 현 서울시장 ‘변종구’가 차기 대권을 노리고 최초로 3선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치열한 선거전을 그린 영화다.
변종구는 오직 서울만을 사랑한다며 ‘서민형 서울시장’임을 표방하지만 실은 그보다 권력을 더 사랑하고, 탁월한 리더십과 쇼맨십으로 시민들의 마음을 쥐었다 폈다 하는 입체적이고 다변화된 정치 9단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행동하는 주인공이 변종구라면, 심정적인 주인공은 박경(심은경 분)이다. 관객이 심은경의 선택에 동화되기 보다는 관객이 심은경의 선택에 대해 상상할 수 있기를 바란 박인제 감독은 “정치, 선거, 그리고 하찮은 유권자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원했다. 결국 “정치인이나 국민들 모두 국민으로서 가지는 권리의 힘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했다.
영화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자고 대놓고 선동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관객들의 호불호는 갈릴 수 있다. “정치인들을 과장되게 표현하거나 선악의 구도로 그리고 싶진 않았다. 캐릭터들을 최대한 현실에 발 붙이고 있는 정치인의 모습으로 그리고자 했다. 상업영화 이야기 구성이 아니란 점에서 불호의 평이 있는 것도 안다. 만약 상업 영화 틀로 가자고 했자면, 양진주(라미란 분) 선거전도 더 치열하게 그렸어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선거 이야기가 핵심이 아닌, 선거를 치루고 있는 정치인들의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말을 그렇게 달려갔다. 그게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박 감독이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변종구 캐릭터로 염두에 둔 배우는 무조건 최민식이었다. 상업영화의 결말로 가지 않겠다는 변 감독의 세계를 적극 지지해준 배우 역시 최민식이다. 그에겐 큰 힘이 된 선배였다고 한다.
또한 변종구가 움직여야 기본 이야기가 흘러가는 영화라 변종구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에 대한 토론을 수없이 했다고 한다. 특히 ‘와이프가 어떻게 세게 변종구의 뺨을 때릴 지에 대한 토론’이 인상 깊었다는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출마선언 장면이나, 딸을 이용하기 위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변종구의 와이프가 얼마나 세게 때릴지에 대해서도 하나 하나 회의를 했다. 뺨을 맞는 장면에선, 서이숙 배우에게 풀 스윙 식으로 엄청 세게 때려야 한다고 의견을 내 놓으셨다. 민식 선배, 이숙 선배 모두 연극 무대에서 기반을 다지신 배우라 상대에 대한 리스펙트가 대단하더라. 그렇게 그 장면이 만들어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영화 감독의 세계에 뛰어든 박인제 감독은 2003년 ‘여기가 끝이다’를 시작으로 2011년 ‘모비딕’에 이어 ‘특별시민’까지 세 번째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인생 목표는 ‘나이스하게 잘 늙자’이고, 영화 감독으로서 목표는 “10작품을 찍고 죽자”이다.
“잘 늙는 게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옹졸한 사람으로 늙어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영화 한편이 개봉하는 게 쉽지 않다. 3년에 한 작품씩 하는 게 보통의 속도라면, 20년의 시간이 지나면 7작품을 만들어서 생전에 10작품은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됐으면 한다. 봉준호, 박찬욱 감독도 아직 10작품을 내 놓지 못했다.
임권택 감독이 만든 영화 숫자가 102편이라고 들었는데, 그 때는 투자의 개념이 아니라서 그렇게 1년에 5편도 찍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홍상수 감독은 1년에 3편 가량 찍으시는데, 그건 배우가 감독을 전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 만큼 홍 감독의 브랜드가 크다는 의미이다. 난 아직 신인 감독이라 모르는 분들이 많다. 대중들이 감독 이름을 알면 신인 감독은 아니겠죠. 하하”
“아직 내 색깔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는 잘 듣고 잘 관찰하는 감독이다. 관객들의 악플평도 꼼꼼히 챙겨본다. “상처받기도 하지만, 그 사람이 보는 영화의 관점을 존중한다. 또 나 역시 그런 의견을 내 분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 의견을 경청하고 다음 영화를 만들 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는 영화란 ‘꿈’을 위해 모인 인간적인 사람들과의 작업이 행복하다고 했다. 특히 함께한 배우 최민식, 곽도원 등이 ‘특별시민’이란 영화를 자랑스러워한 점을 절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아요. 이번 영화를 통해서 최민식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어요. 또 언론 시사가 끝나고 곽도원 형이 이 영화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행복했어요. 흥행 예감이요? 흥행은 해본 적이 없어서 아직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학생 시절에 만든 탈북자 영화 ‘여기가 끝이다’가 인권영화제에 초청이 돼서 갔던 적이 있어요. 그 때 영화를 보고 할머니가 내 손을 잡는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어린 마음에 감동적이었어요. 학생 영화인데 잘 만들면 얼마나 잘 만들었겠어요. 그저 제 진심을 봐 주신거죠. 저희 ‘특별시민’ 도 영화 속 진심이 전 전달되길 바라고 있어요.”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