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마라라고 회담과 한반도 운명

김우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트럼프·시진핑의 3시간 비밀회담

가쓰라-태프트·얄타 밀약 판박이

이념 갈등 딛고 남북 화해 이뤄

강대국 '협조체제'로 나라 찢긴

아픈 역사 다시 반복하지 말아야

김우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4월 6·7일 이틀간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소유인 미국 플로리다 마라라고리조트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현재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이에 도전하는 중국의 만남에 세계의 관심이 쏠렸지만 처음부터 논의할 의제도 밝히지 않았다. 회담을 마치고 합의한 것도 없으므로 공동 기자회견이나 공동 성명도 없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 관계에 큰 진전을 이뤘다. 시 주석과 100% 의견 일치를 봤다”고 했으며 중국 정부는 “긍정적이고 풍성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세기의 만남으로 여겨진 이 회담은 ‘비밀외교’ 또는 ‘밀약외교’였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영국의 윈스턴 처칠, 그리고 적대국인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이 크림반도에 있는 얄타에서 전후 세계질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났다. 이 얄타회담에서 독일 분단이 합의됐고 한반도 분단도 이때 결정됐다는 설이 있다. 이 회담에서는 일체의 공식 회의록을 남기지 않기로 합의했다. 역사에서 서로 책임지지 않으려는 ‘밀담외교’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만들어진 세계질서를 얄타체제라고 한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마라라고 회담에서 아무런 합의가 없었다면서도 ‘100% 의견 일치’와 ‘긍정적이고 풍성한 성과’라고 평가하는 것은 어딘가 의심 가는 데가 있다. 이틀 동안의 회담에서 약 3시간 동안 단둘이 밀담을 나눴다고 한다. 국가 정상들의 3시간 비밀 접촉은 상당히 긴 시간이다. 그러나 내용은 알 수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12일 언론 인터뷰에서 “시진핑이 한반도 전체가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한국이 수천 년 동안 독립적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중국은 “한국인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각각 논평했다. 중국의 논평은 마치 ‘중국이 알아서 할 테니 가만히 있으라’고 달래는 말처럼 들린다. 이 회담에서 한반도의 역사를 이야기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밀담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1905년 미국과 일본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한일 합방에 이르도록 협력했다. 1945년 한반도의 광복과 함께 얄타회담에서 한반도 분단의 밀약이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 이후 19세기까지 수많은 분할 논의가 있었지만 한반도는 이에 참여하지도 못했고 그러한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최강국들은 서로 군사적 갈등이 있을지라도 약소국에 대해서는 암묵적인 합의가 이뤄졌고, 이뤄진다. 이를 협조체제(concert)라고 한다. 한일 합방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한 미일 협조체제의 결과였고 한반도 분단은 얄타회담에서 미소 협조체제의 결과였다. 6·25전쟁은 동서 냉전체제를 완결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한반도의 운명은 강대국에 의해 아무도 모르게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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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라고 회담에서 한반도의 영구 분단 또는 분할을 논의했다고 의심된다. 마라라고 밀담은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며 제2의 얄타밀약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한 사이에 전쟁 상태 또는 군사적 대립이 심해져야 한다. 남북한의 화해의 기회가 적어지고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냉전을 한반도가 짊어져야 한다. 한반도는 경제력이 약해지고 통일 에너지도 힘을 잃고 미국의 태평양 세력판과 중국의 유라시아 세력판 사이에서 새우등이 터진다.

미국의 태평양정책의 중심은 중국시장이다. 일본은 중국으로 가는 징검다리다. 미국의 중국정책 안에 일본정책이 있고 일본정책 안에 한반도정책이 있다. 미국 입장에서 한반도는 일본의 종속변수다. 임진왜란 후 조선조 말까지 있었던 한반도 분할 논의에서 중국은 한반도 북부를, 일본은 한반도 남부를 요구했다. 장기적으로 미국의 경제가 약해지고 중국이 강해지면 미국은 애치슨라인이나 닉슨독트린처럼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일본에 한반도 남부의 방위책임을 맡길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중국과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역사적 요구는 완성되고 한반도는 세계 역사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역사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한반도는 하루속히 분단의 원인인 이데올로기 갈등을 극복하고 남북 화해를 이뤄 세계평화에 이바지해야 한다. 주요 모순인 한반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차적 모순인 이데올로기 차이를 품어주는 국민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역사를 모르면 세계화 시대에 살아남지 못한다.

김우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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