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와 LG화학이 각각 중국 시안과 난징에서 운영하는 대규모 배터리 공장은 지난해 가동률이 10% 수준에 머물렀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16년 초 돌연 전기버스 보조금 지급 대상에 이들 기업이 생산하는 삼원계(NCM) 배터리를 제외하면서 공급처를 잃어버린 탓이다. 자국 배터리 업체를 키우려는 중국 정부의 보호무역주의에 기업들이 눈 뜨고 당했지만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당시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재고를 요청했지만 중국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후에는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로 양국의 관계가 더욱 급랭했다. 삼성SDI와 LG화학은 올 들어 중국 공장 가동률을 일부 회복하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중국 배터리 공장 쇼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9일 19대 대통령선거를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선 가운데 기업들은 새 정부에 적극적인 통상외교 부활을 주문했다. 거세지는 각국의 보호무역주의에 우리 기업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아울러 선진국에 뒤처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 분야에 네거티브 규제 도입과 내수 활성화를 위한 유통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새 정부 들어 공정거래위원회 등 기업 관련 사정 기관의 힘이 막강해지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삼성과 LG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못 이겨 인건비가 멕시코의 6배에 달하는 미국에 공장을 짓고, 중국 시장에서는 우리 기업들이 전방위로 얻어터지고 있다”며 “새 정부는 빠르게 외교 리더십을 회복해 우리 기업들의 고충을 적극적으로 해결해주는 통상외교에 나서야 한다”고 토로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신사업의 기준을 빠르게 수립하고 네거티브 규제 도입을 서둘러야 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자율주행차·로봇·드론 등 관련 산업들은 국내에서 여전히 기준이 모호하고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은산분리가 완화되지 않으면서 인터넷은행 또한 자본 확충 활로가 막혀 있다.
김도훈 경희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는 “모든 규제를 네거티브로 전환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파생되는 신산업에 대해서는 네거티브 규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4차 산업혁명 육성 과정에서 중소기업이나 벤처를 키운다고 해서 대기업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의 인프라와 자금·노하우를 중견 중소기업들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더욱 구체적인 주문이 잇따랐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자율 주행차 등과 관련한 안전기준이 여전히 모호해 기술 개발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며 “정부가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유통 규제는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유통 규제가 기업들의 국내 투자를 막는 데 이어 소비 활성화를 가로막아 내수경기가 더욱 침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통산업에서는 가장 강력한 족쇄 중 하나로 입지규제가 꼽힌다. 2013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매장면적 3,000㎡(약 900평) 이상인 대규모 점포는 주변 상권에 주는 영향과 상생안 등을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취지지만 이에 따라 대형마트 등의 출점은 사실상 완전히 가로막혔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올해 문을 열 예정이었던 롯데마트는 서울시가 4년째 허가를 내주지 않아 버려진 공터로 남아 있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대형마트 의무 휴업 역시 전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규제로 꼽힌다. 전통시장 보호를 위해 한 달에 두 번 대형마트가 의무적으로 문을 닫아야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새 정부 들어서는 백화점·아웃렛·면세점까지 전방위적으로 유통 규제를 옥죄는 형국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매장을 짓지도 못하고 영업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유통산업이 발전할 수 있겠느냐”며 “(새 정부가) 유통산업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정책을 펼치고 소상공인의 반대의견만 들을 것이 아니라 대형 쇼핑시설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도 귀 기울여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새 정부 들어 상법 개정안 등 ‘기업 때리기’ 법안이 탄력을 받고 공정위 조사국 부활 등을 통해 사정기관의 힘이 막강해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깊었다. 보여주기식 조사와 무차별 행정집행에 기업들이 골병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강석구 대한상의 기업정책 팀장은 “법으로 기업의 지배구조를 일방적으로 강제하고 무차별 사정을 하는 식의 기업 정책은 부작용이 클 것”이라며 “기업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새 정부 경제정책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홍우·박윤선기자 seoulbir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