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선택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제19대 대선 투표가 끝나고 3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9일 밤 10시40분. 이날 아침 노원구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했던 옷차림 그대로 국민의당 개표상황실에 들어선 안철수 후보는 다소 지친 기색이었다. 다만 안 후보를 3위로 예측한 방송 3사의 출구조사가 발표된 이후 쭉 굳은 얼굴로 침묵에 잠겼던 박지원·손학규·천정배·정동영 등 국민의당 선대위 지도부에 비하면 홀가분한 표정이기도 했다.
안 후보는 늦은 시간까지 현장을 지키고 있던 당원, 당직자, 지지자들에게 일일이 다가가 악수를 한 뒤에야 연설대 앞에 섰다. 마지막으로 모두를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한 뒤에야 카메라를 바라본 안 후보는 차분히 직접 써온 소견문을 읽었다.
‘미래’를 자신의 키워드로 강조해온 안 후보는 “대한민국이 새로운 대통령과 함께 미래로 나가기를 희망한다. 대한민국의 변화와 미래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지난 8일 밤 선거운동을 마무리하는 발언에서 광주 ‘뚜벅이 유세’ 당시 “내가 많이 부족합니다”라는 말에 운집한 지지자들이 “아니에요”라고 외쳤던 것을 언급했다. 그는 “몇만 명이 미리 의논한 것처럼 그렇게 말하는데 평생 이렇게 큰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그때의 위로가 힘이 된 듯 “변화의 열망에 부응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고 말하는 안 후보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다섯 문장의 짧은 소견문을 읽은 안 후보는 더 머무르지 않고 그대로 상황실을 떠났다. 등 뒤에서 한 당원은 큰 소리로 “안철수 화이팅”을 외쳤고 일부 지지자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고생 많으셨다”는 기자들의 말에 미소 띤 얼굴로 “고생했다”고 화답한 안 후보는 앞으로의 행보를 묻자 “내일 말씀드리겠다”고만 답한 뒤 차를 타고 떠났다.
박지원 상임선대위원장은 “안 후보가 국민들께 드릴 말씀은 전했으니 다른 건 내일 선대위 회의를 소집해 그때 얘기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 위원장은 패인을 묻자 “패배를 했으면 깨끗하게 인정하면 되는 것”이라며 “당의 입장에서 분석할 건 분석하고, 반성할 건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은 나아가겠다”고 했다. 내내 속삭이듯 얘기했던 박 위원장은 ‘깨끗하게 인정하면 된다’고 말할 때만큼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