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취임 선서를 하기도 전에 국회를 방문해 야4당 지도부를 잇따라 만났다. 여소야대 구조에서 야당의 협조 없이는 원활한 국정 운영이 힘든 만큼 ‘협치’로 풀어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시정연설 외에는 국회에서 모습을 보기 어렵던 전임 대통령을 반면교사 삼아 소통과 대화를 늘렸으면 한다. 새 대통령이 정치인에 이어 시급히 만나야 할 대상이 기업인들이다. 수출이 살아나고 있지만 한국 경제는 지금 살얼음판을 걷듯 위태롭다.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와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으로 우리 기업들이 큰 곤경에 처해 있다. 대외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나 고용 확대에 선뜻 나서기 힘든 상황이다. 대내적으로도 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내수가 얼어붙었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문 대통령은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81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이 소진됐기 때문에 재정 부담이 있더라도 공공 부문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세금을 들여서라도 일자리를 늘리면 좋겠지만 근본적 처방은 아니다. 기업들이 투자를 늘려 순수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도록 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그러려면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지난해 20대 국회 개원 후 올 3월 말까지 국회에 발의된 766건의 기업 관련 법안 중 규제 법안이 전체의 68%에 달하는 523건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법인세율 인상, 집단소송제 도입, 자사주 규제 같은 법안들이다. 하나같이 기업을 옥죄고 투자를 위축시키는 법안들이다.
문 대통령은 당선이 확실시되던 지난 9일 밤 새 정부의 국정과제로 개혁과 통합을 제시했다. 적폐 청산과 함께 갈등을 봉합하고 사회 통합을 이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3기 민주정부의 성패는 결국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 여부에 달려 있다.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적폐 청산과 사회 대개혁도 추진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맹자’ 양혜왕편에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라는 말이 나온다. 제(濟)나라 선왕(宣王)이 정치에 대해 묻자 맹자는 “백성들이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지내면 왕도의 길은 자연히 열리게 된다”며 “경제적 안정이 없으면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고 답했다. 국민들의 생활 안정은 통치의 근본이다.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의 주요 파트너는 기업이다. 문 대통령이 개혁과 통합의 국정 과제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경제계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참석한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강연에서 “일자리를 늘리는 기업은 등에 업고 다니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경”이라며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으니 믿어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발표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도 일자리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을 믿는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경제 활동을 먼저 보살피는 대통령이 됐으면 한다. 국민들의 바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sain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