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청와대, 그 성역을 허물겠다면...

권구찬 논설위원

광화문 대통령시대 구상은

소통·개방의 상징 효과 크지만

물리적 이전만이 능사는 아냐

국민 원하는 건 권력 집중 견제

권구찬 논설위윈


짧지만 강렬했던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대선 개표에서는 극적인 드라마는 없었다. 40%를 약간 넘었던 여론조사 지지율은 개표 초반부터 끝까지 유지돼 TV 생중계를 지켜보는 흥미와 관심은 덜한 편이었다. 대통령 파면에 따른 보궐선거로 치러진 이번 대선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그만큼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실망과 상처·분노가 컸던 것이다. ‘이게 나라냐’는 절규는 과거 집권세력에 또다시 나라를 맡겨서는 안 된다는 심판론에 힘을 실어줬다.

문재인 후보는 10일 오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당선 의결로 숨돌릴 틈도 없이 대통령 임기를 곧바로 시작했다. 경호와 의전부터 달라졌지만 그에게 낯설지 않을 것이다.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지난 2008년 2월 청와대를 떠난 지 9년 만에 청와대 복귀이지만 이번에는 대통령 보좌진이 아닌 국정 수반이자 청와대의 주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 그다지 오래 머물지 않을 것 같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그는 지난달 광화문 광장에서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옮겨 퇴근길에 남대문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는 이웃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광화문 공약은 지난 18대 대선공약에도 있었다. 두 번이나 제시한 것은 국정철학과 신념·가치관이 반영된 것으로 짐작된다.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사건을 거치면서 청와대 이전에 더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청와대 보좌진을 맡을 당시 비서진 건물과 대통령 집무실의 물리적 거리가 주는 한계와 부작용을 느꼈을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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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이전은 대통령 경호와 보안, 비용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국민소통의 필요조건이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아니다. 일반 국민이 접근조차 어려운 북악산 자락에서 인파가 넘쳐나는 광화문으로 옮긴다고 해서 국민 교감도가 높아질지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우뚱거린다. 걸어서 출퇴근하면서 국민의 삶에 보다 더 다가서겠다는 대목은 혼란스럽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참모진으로부터 민생현장 행보를 건의받을 때마다 “나더러 사진 찍고 쇼를 하란 말이냐”며 역정을 낸 일화는 잘 알려졌다. 대통령이 시장통에 좌판을 벌린 서민의 손을 잡아주는 게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차라리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에 신경을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게 노무현의 실용주의였다. 노무현 정신을 누구보다 꿰뚫을 그가 정치적 제스처 같은 구상을 내놓으니 혼란스럽다는 거다.

국민 소통방식은 여럿 있다. 청와대 참모진은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고 그런 통로 중 하나가 언론이다. 보도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비서진과 언론인의 대면 접촉은 생생한 여론 전달의 창구로 제격이다. 참여정부는 권언유착을 막고 건전한 긴장관계를 형성하겠다며 출입기자의 청와대 비서동 출입을 금지했다. 기자실에 대못을 박고 브리핑룸으로 전환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언론 발 묶기는 과한 조치다. 돌이켜보면 최순실 일당의 국정 분탕질은 1991년 완공 이후 26년간 금 줄 치고 성역이 된 청와대의 음습한 속성을 비집고 싹이 텄다. 문고리 권력이 똬리를 틀기에 제격인 환경인 게다. 만약 청와대 비서동이 취재진에 열려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해본다. 국정농단의 싹을 호미로 막을 수 있지는 않았을까 아쉬움이 든다.

청와대가 그 음습한 권위주의 성역을 허물고 금기를 풀겠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청와대는 가진 권력만큼이나 충분한 견제를 받아야 한다. 국회와 시민단체도 그런 기능을 하지만 지근거리의 언론 만한 데가 없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물리적 이전만 아니다. ‘대통령의 뜻’이라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청와대 우선주의, 몇몇 ‘어공’에 집중된 권한, 청와대 파견 근무가 ‘늘공’의 출세 코스가 된 인사문화 역시 청산 대상이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만으로는 국민과 유리된 권력, 불통의 청와대 이미지를 지울 수 없다.chans@sed.co.kr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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