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국가 이탈리아는 지난 1990년 국내총생산(GDP) 순위가 세계 5위였고 1인당 국민소득도 2만달러를 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0년째 1% 성장의 벽에 갇혔고 소득은 아직도 2만달러대에 머물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40%를 웃돌았다. 유럽의 강자 중 하나였던 이탈리아의 추락은 현재진행형이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정치불안을 꼽는다. 이탈리아는 10여개의 정당이 난립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들어선 정부가 63개에 달한다. 법률안은 상하원의 승인을 모두 받아야 통과되는 입법구조라 개혁입법도 쉽지 않다. 급기야 정치 불안정을 끝내기 위해 마테오 렌치 총리가 개헌 카드를 꺼냈지만 이 역시 지난해 말 부결됐다. 갈등과 반목·분열의 정치는 한국 정치와도 묘하게 겹친다.
우리 역시 정치적폐론은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정치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소모적인 정치 관행과 과감하게 결별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레토릭에 불과했다. 반목과 분열·퇴행의 정치는 계속됐다. 진보·보수 정권이 교대로 집권했지만 ‘폴리리스크(polirisk)’는 20년째 대한민국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정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무역협회가 경제전문가와 일반인 1,3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4월)에서 우리나라의 정치수준을 묻자 전문가는 5점 만점에 1.79점, 일반인은 1.64점으로 낙제점을 줬다. 지난 10일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도 “구시대 정치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고 밝혔는데 정치개혁 없이는 대한민국의 변화를 시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의 퇴행은 레드라인을 이미 넘어섰다. 청와대에 과도한 권력이 쏠리면서 박근혜 정부에서는 문고리 권력과 비선실세가 국정을 쥐고 흔들었다. 정부도 대기업도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금융권에는 1,000명 넘는 낙하산 인사가 내려왔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코드인사’가 논란이 됐다. 입법부인 국회는 브레이크 없는 권력이 됐다. 대화와 타협의 부재로 규제 완화 법안 등에는 먼지만 쌓여 있다. 서비스산업발전법은 6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고 원격의료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과 ‘규제프리존법’ 통과도 불투명하다. 16대 국회에서 7.3%였던 정부 입법 미반영률은 17대 20.1%, 18대 23.9%, 19대 26.5%로 상승세다.
정치가 주도해야 할 개혁이 미뤄지면서 2000년대 초 4.7%였던 잠재성장률이 10년 뒤에는 2% 미만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탈리아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 개정이나 정당 간 ‘패키지딜’을 통해 정치권 혁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결국 정치가 핵심”이라며 “개혁이 늦어지면서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