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문제는 정치다]국익걸린 안보·통상분야도 票만 생각해 말바꾸기 예사

사드 배치·한미FTA 등

여야 민심따라 오락가락

사회 통합은 "나몰라라"

지난해 8월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구경북(TK) 지역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사드 배치 지역을 성주포대가 아닌 다른 지역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다른 지역도 조사해본다는 뜻이라고 해명했지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지역을 성주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앞서 최경환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영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된 상태에서 사드가 배치되면 지역 민심 악화를 가중시킨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논란은 커졌다. 정권 차원에서 사드 배치를 결정하고도 지역 민심에 따라 국가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준 탓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국익이 달린 안보나 통상 분야에서 ‘말 바꾸기’가 지나치게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당이냐 야당이냐, 표에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특정 정책을 지지했다가도 이를 철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들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드만 해도 배치에 반대했던 국민의당은 대통령 선거 직전 찬성으로 당론을 바꿔 비판을 자초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입장이 일관적이지는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사드와 관련해 “득보다 실이 크다”며 배치를 재검토하자고 했다가 올 초 “한미 간 합의가 이뤄진 것을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국회 비준을 포함해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겠다”고 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인명진 목사는 서청원 의원 측으로부터 과거 사드 배치 반대와 개성공단 재개를 주장했던 인물이라는 십자포화를 맞았다. 인 목사가 직접 나서 “반대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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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에서 추진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말 바꾸기 논란이 컸다. 당시 야당이었던 새누리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더 이상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지 말라”며 “국민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를 볼모로 한미 FTA를 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여당이 되자 쇠고기 수입을 포함한 한미 FTA를 추진해 촛불시위를 촉발하기도 했다. 한미 FTA를 추진했던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한미 FTA가 타결된 2007년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국정의 중심에 섰던 문 대통령은 2011년 국회 비준을 앞두고 “세상에 무슨 이런 조약이 다 있나. 현 상태에서 비준하는 것은 결단코 반대”라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미국이 한미 FTA로 한국의 이익이 미국보다 크다며 재협상을 요청하자 문 대통령은 “한미 FTA를 체결한 사람이 우리”라고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 때 추진된 제주 강정 해군 기지와 관련해서도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이 되자 “공사를 중단하고 타당성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분야에서도 정치권은 말 바꾸기를 서슴지 않고 있다. 2004년 연기금의 수익 확대를 위해 주식투자 확대 등을 추진했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반대했다. 하지만 2008년 여당이 되자 연기금의 투자 확대를 추진했다. 야당인 17대 국회 때 반대했던 청년취업 지원프로그램도 18대 국회에 여당이 되자 청년 인턴제 등으로 포장만 바꿔 예산을 더 늘린 법안을 단독으로 의결하기도 했다. 또 지난 총선 때 새누리당은 최저임금을 9,000원까지 인상하겠다고 했지만 선거가 끝나자 “공약은 오보였다”는 말을 해 국민들의 비난을 자초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치가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에 분명한 입장을 보이지 않으면 국민들의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주요 연구기관의 연구위원은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 싶어 스텔스 모드를 보이겠지만 철학이 없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국익과 관련해 분명한 입장이 없으면 국민들도 가치 판단에 혼란을 느껴 사회 통합을 이루기 어렵다”고 말했다.

구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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