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아용 과자를 만드는 식품 중소기업 사장 이동건(가명)씨는 최근 대형마트와 납품계약을 맺으면서 황당한 일을 당했다. 대형마트는 계약에 앞서 제조단가 공개를 요구했다. 납품단가 후려치기의 전조였다. 이 사장은 영업비밀이라 공개가 어렵다고 맞섰지만, 계약불가를 외치는 대형마트의 주장을 이길 수 없었다. 이 사장은 옷을 발가벗기는 듯한 부당함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긴 침체기에 빠져 있는 우리 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중심으로 경제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한다. 특히 대·중견기업과 중소기업간 만연해 있는 갑질이나 단가 후려치기 등과 같은 불공정거래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실제로 중소업계는 우리 경제의 고질적 병폐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꼽는다. 제대로된 자유 시장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강자의 불공정행위를 사회시스템으로 엄벌해야 하는 건 필수다. 그래야 시장경제가, 자본주의가 제대로 꽃피울 수 있다.
반(反)독과점 등 공정거래 사회시스템을 선진적으로 발전시키고 정착시켜온 미국이 ‘실리콘 밸리’로 상징되는 벤처기업의 천국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린아이와 성인이 경쟁하고 있는 데도 그저 시장원리대로 하자는 신자유주의 주장들이 금과옥조인양 여과없이 전파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노블리주 오블리제’는 고사하고 스스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천민 자본주의의 민낯이기도 하다.
한국의 실상은 참담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발표한 ‘중소기업 CEO 사회갈등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불공정한 계약문화에 대해 10명 중 7명 이상(74%)이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이는 2012년 46.4%에서 크게 상승한 수치다.
중소기업 서오텔레콤과 대형 통신사 LG유플러스간 특허분쟁 소송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대표적 사례다. 대한민국 특허분쟁 사상 최장기 사례로 기록되는 이 소송에서 서오텔레콤의 특허권을 인정하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음에도 막강한 대형 로펌을 앞세운 LG유플러스는 아직도 별건 재판으로 서오텔레콤을 괴롭히고 있다.
서오텔레콤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대기업이 하청업체들에 자행하는 ‘갑질’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대자본이 문어발식 확장전략으로 골목상권을 침범하거나 어렵게 구축한 기술을 탈취해가는 약탈행위가 당연한 상관행인양 만연해 있다.
지금까지 많은 정권들이 중소기업 살리기에 나섰다.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 깃발과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이를 위한 실천방안이었지만 요란한 구호로만 그쳤다. 표심을 노린 선심성 공약이었거나 정책집행의 디테일이 부족했던 탓이다. 중소기업청장을 역임한 한정화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차기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존할 수 있는 열린 생태계를 구축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경제발전을 도모하기 힘들 것”이라며 “공정거래와 기술 스타트업 활성화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