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일자리 확대, 에너지·환경 등 문재인 정부가 잇따라 내놓은 주요 정책이 서울시 정책을 벤치마킹하거나 확대 발전시킨 것이어서 서울시 정책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미래를 보려면 서울시 현재 정책을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불공정 갑질 방지’ 등 경제민주화를 비롯해 지방분권 확대, 복지 강화 등이 정부의 다음 정책으로 제시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서울시 정책건의 60%가 문재인 공약에 담겨=서울시는 대선을 앞둔 지난달 말 10대 분야 66개 정책을 각 정당이 공약에 반영해 국가정책화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가장 많은 공약을 흡수했는데 66건 가운데 일부 서울지역 문제를 제외한 60%인 40건 이상이 반영됐다. 서울시는 실질적 지방분권 확대, 경제민주화, 노동존중 구현 제도화 및 문화 확산, 보편적 복지 실현, 지속 가능한 에너지·기후환경 조성, 주거안정 및 주거복지, 도시재생 등 분야의 정책과제를 내놓았다. 박원순 시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에서 사실상 한배를 타고 있다.
서울시 정책건의가 현실화한 첫째 사례는 문 대통령이 지난 12일 첫 외부공식 일정에서 제시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다. 이는 서울시가 제시한 노동 분야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확대’와 바로 연결된다. 앞서 서울시는 2011년 10월 박 시장 취임 직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대책을 내놓았고 일정한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금까지 시 본청과 사업소, 투자·출연기관의 비정규직 8,687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돼 ‘비정규직 굴레’를 벗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박 시장의 주요 공약이었고 이제는 문 대통령의 약속이 된 셈이다. 문 대통령의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도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전국화’와 연결된다.
◇다음은 ‘경제민주화’에 초점 맞출 듯=문재인 정부의 다음 단계는 경제민주화로 점쳐진다. 특히 ‘불공정 갑질 방지’ 대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노동과 에너지 문제를 이슈화하면서 일단 기선을 잡은 상태다. 경제민주화는 문 대통령의 두 번째 공약으로 꼽힌다. 적폐청산, 권력기관개혁이 첫 번째 공약임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최대 공약인 셈이다. 이는 서울시도 가장 중요하게 인식하는 정책이다.
지난달 정책건의에서 서울시는 △프랜차이즈 불공정 거래 피해구제 △대규모 점포 규제 실효성 강화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강화 등을 내놓았다. 서울시는 2월 공개한 ‘경제민주화도시 서울 기본계획’에서 불공정·불평등한 민생경제가 최대의 문제라고 제시했다. 또 경제민주화의 대표적인 실천사례로 ‘프랜차이즈 불공정 거래 적발’을 내놓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공약에서 “갑의 불공정 갑질과 솜방망이 처벌, 이제는 끝내겠습니다”라고 강조하며 한 발짝 더 나갔다. 공약은 △가맹사업, 대규모 유통업, 대리점업, 전자상거래 등 각종 불공정 행위 및 갑질 근절 추진 △적합업종 보호 특별법 제정으로 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를 보호 △협력이익배분제를 한국형 이익공유 동반성장 모델로 추진 등을 제시했다.
노동 부분도 비정규직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시는 생활임금제 전국확산, 근로자이사제 전국적 확대 시행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도 후보 공약에서 서울시의 기존 정책들인 생활임금제 확산과 함께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고 민간기업에도 확산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서울시 ‘지방분권 실현’도 반영될 듯=서울시는 18일 지방분권 실현을 목표로 ‘서울시 자치헌장 조례’를 공표하기로 했다. 대선 이후 쟁점 사항에 대해 서울시가 처음으로 반응한 게 지방분권 확대인 셈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지 22년이 지났지만 중앙정부가 명령·규칙 등을 통해 지자체 사무를 규제하는 등 과도한 제약을 가하고 있다”며 “실질적인 지방분권이 실현되지 못하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조례를 제정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공약에서 지방분권을 실현하기 위해 중앙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고 지방의 자치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명시한 상태다. 특히 대통령과 광역지자체장이 참여하는 ‘제2국무회의’ 제도를 도입하고 지방자치법의 전면 개정을 통한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의 법적 기반을 확보하기로 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제2국무회의가 지자체의 주요 의견 통로가 될 듯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