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기대와 우려 속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선거 캠페인에서 문 대통령은 복지를 늘리겠다면서 재원조달 방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복지와 증세를 따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 정부는 복지재원 조달 방안으로서 증세를 국정의 주요 과제로 삼아야 한다. 새 정부의 세제는 공평과 효율을 강화하는 방향이 돼야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면서 조세저항 없이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다.
먼저 소득세 강화다. 소득세는 조세부담능력을 가장 잘 표시하는 소득을 과세대상으로 한다. 이 때문에 가장 공평한 세금이다. 소득세 세수는 ‘소득금액(과세대상) × 세율’의 산식으로 산출된다. 한국의 소득세 최고세율(40%)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35.9%)보다 월등히 높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세 비중은 3.6%로서 OECD 국가 평균(8.4%)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다. 새 정부의 세제 운영은 세율인상보다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 방지, 자산가의 부동산·주식·금융자산에서 발생하는 자산소득을 중심으로 세원(과세 대상소득)을 확대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다음으로 세제의 효율성 강화다. 법인은 주주가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 즉 ‘도관(導管)’에 불과하다. 법인소득은 궁극적으로 임금·배당·이자 등으로 개인에게 귀속된다. 이래서 법인을 부자로 보고 법인세를 강화해서는 안 된다. 법인소득의 최종 귀속자인 고소득자의 소득세를 강화해야 공평과세가 실현된다. 세계 각국이 법인세율을 내리는 ‘조세경쟁시대’에 우리만 세율을 올리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국내외 자본의 국내투자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결국 경제에 비효율을 초래해 일자리와 세수가 줄어드는 폐해로 이어진다. 법인세 인상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조세감면은 중소기업지원·투자촉진 등 정책적 목적에서 조세 부담의 공평을 훼손하면서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다. 그러므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조세감면은 수백 가지에 연 36조원에 달한다. 현행 조세감면 중에는 세 부담의 공평을 해치면서까지 세금을 깎아 줄 필요가 있는지 효율성이 의심스러운 것이 많다. 새 정부는 일몰(폐지기한)을 지키면서 철저한 조세감면 효과 검증으로 감면액을 획기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
한편 소비를 과세대상으로 하는 부가가치세는 세 부담의 역진성, 즉 불공평이 단점이다. 하지만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막대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는 효율성이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부가가치세율을 1%포인트 인상하면 연 5조6,000억원, 2%포인트 인상하면 11조6,000억원의 세수가 늘어난다. 또한 우리나라 부가가치세율(10%)은 독일(19%)·영국(20%)·스웨덴(25%) 등 부가가치세를 도입한 대부분 국가보다 월등히 낮다. 이것도 부가가치세 세율 인상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다만 세출 구조조정을 하고 세원확대와 비과세·감면 축소 후에도 재원이 부족할 경우 최후 증세 수단으로 부가가치세율 인상을 검토할 수 있다.
새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전임 정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증세 없이 양극화, 저출산·고령화로 급증하는 복지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증세 없는 복지는 현세대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미래세대가 부담할 국가 채무를 늘리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 재정위기의 그리스·아르헨티나와 잃어버린 20년을 보낸 일본의 전철을 따라가는 길이며 미래세대 청년들의 희망을 빼앗는 정책이다. 새 정부는 세율 인상보다 부자 중심으로 세원을 확대해 세 부담의 공평성을 회복하고 조세감면 축소로 세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이래야 경제를 선순환으로 이끌면서 양극화를 해소하고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필요한 재원을 원활하게 확보할 수 있다. 박상근 세무회계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