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정부 부처가 모여 있는 ‘행정수도’ 세종시에는 고속철도(KTX) 역이 없다. 대신 20~30분 거리에 오송역이 있다. 이런 탓에 서울에 올라가는 세종시 공무원은 버스나 택시를 타고 오송역에 가야 한다. 오송에서 서울까지 KTX로 50여분이면 가는데 오송에서 세종까지 그 절반 수준인 20~30분이 더 소요돼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불필요하게 길거리에 버리는 시간이 많아 업무수행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이 같은 비효율 때문에 지난 2013년께부터 KTX 세종역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번번이 무산됐다. 오송을 비롯한 충북 도민들이 자신들의 지역경제가 위축될 것을 우려해 반대했기 때문이다. 특히 청주·음성·제천 등 충북 지역구의 국회의원들이 지역 이기주의에 편승해 세종역 반대에 힘을 실은 것이 한몫했다. 심지어 이들은 국토교통부가 ‘세종역 신설의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해보자’고 연구 용역을 시작한 자체도 강력 반발하며 국토부 장관을 찾아가 “연구용역을 하지 말라”고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정부의 정당한 업무 수행을 방해하는 ‘월권’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세종시를 방문한 미국 공무원이 ‘세종시가 행정수도라면서 왜 교통이 이렇게 불편하냐’고 묻는데 이런 사정을 말할 수가 없어 부끄러웠다”고 하소연했다.
국회의 과도한 지역구 챙기기로 정부업무에 차질을 빚고 비효율을 초래하는 것은 이뿐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난립하고 있는 바이오 클러스터, 연구개발(R&D) 특구, 경제자유구역 등 지역 특구가 대표적이다. 국회의원과 지자체장이 선거 과정에서 표심을 얻으려고 지역 특구를 유치하겠다는 약속을 남발한 탓이다. 그 결과 경제자유구역은 부산·진해·군산·대구 등 8곳, R&D 특구는 광주·대구·부산 등 5곳에 이른다. 지역 특구가 아니라 전국 특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권의 발목잡기는 예산 결정 과정에서 극에 달한다.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예산을 통과시키는 이른바 ‘쪽지 예산’이 대표적이다. 쪽지 예산에 대한 비판이 거세자 지난해부터는 ‘국회 상임위원회나 예산결산 특별위원회를 거치지 않는 예산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방침이 정해졌으나 의원들은 비공개인 증액 심사를 적극 이용하는 편법을 찾았다. 이 결과 지난해 예산 증액 요구 사업은 전년 9조원에서 40조원으로 급증했다. 당초 국회는 증액 심사가 이뤄지는 예산안조정소위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밝혔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새 정부가 적폐청산을 강조하는데 정치권의 과도한 지역 챙기기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각종 편법이야말로 뿌리 뽑아야 할 적폐”라고 꼬집었다. 이어 “예산 결정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등 감시 기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