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인류 최고의 발명품 '기업'

■기업 진화의 비밀(김은환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펴냄)

더디게 진행됐던 인류 발전

기업 등장 후 극적으로 빨라져

진화 사회과학적 접근 통해

생산·고용·유통 혁신 이끈

기업 과거~미래 명쾌히 설명



지구 전체의 45억 년 역사를 24시간에 빗대면 인류의 등장은 자정 몇 초 전에 불과하다.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것이 10만년 전 안팎이니 그렇다. 하지만 눈 깜빡할 그 몇 초 사이에 지구는 이전 수십억 년을 뒤흔든 격변을 맞았다.

이번엔 그 인류의 역사를 따로 떼 보자.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인류사에서 ‘기업’이라는 조직의 등장은 정부·군대·교회·대학에 비해 꽤 나중의 일이다. 고대 로마의 벽돌공장이나 백제 도래인이 만들어 1,400년 된 일본 건축회사의 사례가 있지만 “생산·유통·고용의 주역으로서 우리가 알고 있는 기업은 어디까지나 근대의 산물로 봐야 할 것”이다. 석기 시대 이래로 느릿하게 전개되던 인류의 발전은 근대 이후 갑자기 빨라진다. 그 극적인 가속도 지점에 바로 기업이 있었다. 불의 발견만큼이나 기업의 발명은 혁명적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자문역을 맡고 있는 저자는 “기업이 경제의 전면으로 부상한 시점과 극적으로 빨라진 인류사회 성장의 변속이 겹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근대의 어느 시점에 어떤 계기로 혁신이 폭발적으로 가속화됐는지, 그 과정에서 기업이 어떤 역할을 하며 변화를 주도했는지를 살펴본다. 조직이론 전문가가 진화 사회과학적 접근을 시도해 더 돋보이는 책이다.


헤겔은 역사가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 논리로 전개된다 했고, 저자는 기업의 발전상이 협력과 혁신의 길항에서 비롯한다고 봤다. 그간 경쟁을 중심으로 기업을 분석하던 것과 사뭇 다르다. 협력과 혁신은 언제 어디서나 대체로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이 둘은 미묘한 긴장관계를 이룬다. “협력이란 안정적인 틀을 요구하고 참여자 상호작용에서 상당한 정도의 예측 가능성을 전제한다.…반면 혁신은 바로 이러한 예측 가능성을 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을 새로운 질서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수행적 협력보다는 단호하고 일방적인 리더십이 요구되곤 한다. 즉 협력과 혁신은 서로 길항하는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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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인류를 진화시킨 ‘협력’ 관계를 ‘네가 도우면 나도 돕고 네가 날 버리면 나도 버린다’는 식의 ‘상호호혜적 협력’과 위계에 의한 ‘명령과 통제’, 제화를 통해 필요를 해결하는 ‘시장거래’의 3가지로 나눈다. 이를 기반으로 상호호혜적 협력은 ‘공동체’ 안에서 작동하고, 명령과 통제는 ‘국가’, 익명 간 거래는 ‘시장’이라는 상호의존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속에서 탄생한 기업은 특이하게도 “외부적으로는 시장을 창출하면서 내부적으로는 명령과 통제에 의한 위계 조직을 구성”했으며 “명령경제와 시장경제의 경계선에서 활약하며 공동체의 속성도 가지고 있는 복합 메커니즘”을 보인다.

산업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기업은 가족·친족이 주축이 돼 숙련공 위주로 운영되던 ‘고전적 안트러프러너(entrepreneur·기업가)시대’를 지나 수직적 위계와 정교한 관리 시스템을 갖춘 ‘경영자와 대기업의 시대’에 이르렀다. 주목할 지점은 1980년대 말부터 전개된 현 상황이다. “이제는 다시 시대가 바뀌어 기업 영역이 해체, 분리되고 그 상당 부분이 시장화”되는 상황을 저자는 ‘전환기’라 부르며 네트워크화, 전문화, 플랫폼화를 그 특성으로 꼽았다.

진화를 거듭한 기업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제시한 책은 분산화된 시스템과 일관된 의사결정을 내리고 책임지는 메커니즘의 2가지 원리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유지할 것인지에 기업의 미래가 달려있다며 생각할 과제도 함께 던져준다. 2만원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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