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의 자화상 ‘서울스퀘어’
서울 오피스 시장에서도 남다른 의미를 간직한 건물
서울스퀘어는 한국 현대사의 자화상과 같은 건축물이다.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와 위기를 고스란히 응축하고 있는 대우그룹이 사옥으로 사용했던 건물이기 때문이다. 한 때 세계경영을 목표로 내달렸던 대우그룹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으나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투자자의 손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당시 한국 경제의 모습과 똑 닮았다. (★본지 2016년 5월 14일자 건축과 도시 : 한국 현대사의 자회상 ‘서울스퀘어’ 참조)
서울스퀘어가 한국 오피스 시장에서 가지는 의미도 남다르다. 한 때 역대 최고가 기록을 세웠으며, 외국계 투자자의 첫 대형 부동산 투자 실패 사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서울스퀘어는 대우그룹이 어려워지면서 지난 2007년 8월 당시 역대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우며 외국계 투자자인 모건스탠리에 매각됐다. 매각가는 9,600억원이다. 이는 지금도 지난해 캐나다계 부동산투자회사 브룩필드가 투자한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현대차그룹이 사들인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건물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가격이다. 서울스퀘어가 오피스 시장에서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매각가가 높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스퀘어는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큰 차익을 남겼던 외국계 투자자의 첫 실패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2010년 수천억원의 손실을 보고 싱가포르계 투자자인 알파인베스트먼트에 서울스퀘어를 넘겼으며, 이후 모건스탠리는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철수했다. 그 후 모건스탠리가 다시 한국 시장에 돌아오기까지는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모건스탠리는 2016년 광화문에 위치한 수송스퀘어(옛 수송타워)에 투자하며 한국 시장에 돌아왔다.
옛 기억을 뒤로하고 반전 준비하는 서울역 오피스 시장
외국계투자자의 첫 투자 실패, 서울스퀘어에도 볕 드나
주인이 바뀌고 난 뒤에도 분위기 반전은 쉽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서울역 일대 오피스 시장의 공실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스퀘어에 투자한 리츠(케이알원 기업구조조정리츠)가 올 하반기 만기를 앞두고 있지만 빠른 시일 내에 매각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만기가 연장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앞날이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서울역 고가공원 개장으로 서울역 일대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면서 서울스퀘어도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서울스퀘어도 서울역 고가도로와 연계해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업시설(서울스퀘어몰) 개선에 신경을 쓰고 있다. 현재 서울스퀘어는 지하 1층~지상 2층에 50여개의 업체가 입점해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비밀(B Meal), 블랙드럼(Blackdrum) 등 이태원과 청담동에서 유명한 맛집을 입점시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여기에 서울스퀘어는 서울역 고가도로 개장에 맞춰 지난 19일부터 다음달 18일까지 ‘서울스퀘어 사파리 월드 이벤트’를 연다. 서울스퀘어 곳곳에 마련된 동물들과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식사교환권과 무료주차권 등을 제공하면서 사람들을 끌어 모을 계획이다. 서울스퀘어 자산관리(PM)을 맡고 있는 세빌스코리아 관계자는 “서울역 고가공원 개장으로 서울역 주변의 역사와 문화, 쇼핑을 연결할 수 있는 새로운 도보 관광지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며 “주변 환경이 개선되면서 상권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간 공실률에 대한 우려가 높았던 오피스 부문도 개선되고 있다. 서울스퀘어에서는 올해 연면적 약 4만 5,000㎡(35%)를 사용하던 LG이노텍, LG전자, 하나은행이 사무실을 비운다. 하지만 연면적 약 3만 7,000㎡를 사용하게 될 SK플래닛, 주한 유럽연합대표부, 미국계 제약회사 MSD 등이 올 상반기부터 내년까지 입주하면서 이들의 빈자리를 채울 예정이다. 서울스퀘어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서울역 일대 오피스 시장의 분위기도 개선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14년 4분기만 하더라도 31.1%에 달했으나 올 1분기에는 절반 수준인 16.5%를 기록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서울역
용산역과 경쟁적으로 발전하며 가치 높아질 듯
업계에서는 서울역 고가공원 개장을 시작으로 앞으로 서울역 주변 지역의 가치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오는 2023년 개통될 광역급행철도(GTX) 에 대한 기대감이 더 높다. GTX 개통으로 서울역 주변 지역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져 업무 지구로서의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런 기대감 때문인지 최근 서울역 주변 지역에 대한 기관투자자들의 투자도 활발하다. 올 초 프루덴셜파이낸셜그룹의 부동산투자회사인 ‘PGIM(옛 프라메리카)’이 과거 LG유플러스가 사옥으로 사용했던 T타워를 사들이며, 2011년 이후 처음으로 한국 부동산 시장에 투자했으며, 연세재단뒤편에 들어서는 쌍둥이빌딩(남대문로 5가 도시환경 정비 사업) 개발 사업도 6,200억원 규모의 자금 조달을 마쳤다.
사실 그간 서울역이 대우그룹과 외국계 투자자에게만 가혹했던 것은 아니다. 이들뿐만 아니라 서울역 맞은편에 터를 잡았던 많은 기업들이 이 곳에서 고전을 겪었다. STX그룹, 벽산건설도 그 중 하나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예부터 서울역 일대가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풍수지리라는 것은 과학”이라며 “과거 서울역 주변의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은 것은 불안정한고 비상적인 사회 구조 때문이지 터가 좋지 않아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울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과 용산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 미래 발전을 위해 경쟁하고 있다”며 “인접하고 있는 두 지역이 서로를 의식하면서 경쟁하다 보면 서울역 주변 지역의 미래가치가 더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