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6월26일 국회 본관에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이한동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당시 야당 의원들은 이 후보자의 당적 변경과 말 바꾸기, 부동산 투기 의혹, 5공 정권 참여 전력 등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여야 간의 치열한 공방 끝에 이 후보는 찬성 139표, 반대 130표로 아슬아슬하게 총리 인준을 통과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어 도입된 인사청문회는 이후 고위 공직자들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후보자의 업무능력과 도덕성을 검증할 수 있는 핵심 제도로 자리 잡았다. 이를 통해 대통령의 밀실 인사를 바로잡는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청문회 무대에 직접 서야 하는 당사자들에게는 공포 자체다. 후보자들에 대한 혹독한 검증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중도 낙마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제도가 처음 도입된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첫 여성 총리에 지명된 장상 후보가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문제로 국회 인준의 벽을 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9월에는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가 동의를 받지 못했다. 2006년 대상이 장관까지 확대된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는 김태호 총리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남주홍 통일부 장관, 이춘호 여성부 장관, 박은경 환경부 장관,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줄줄이 사퇴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김용준·안대희·문창극 등 3명의 총리 후보가 낙마하기도 했다. 청문회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후보자를 흠집 내기 위한 도덕성 검증에 치중하는 바람에 자질이나 전문성 평가 기능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24일에는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이 후보자는 부인 그림의 고가 매각 의혹과 아들의 군 면제 의혹 등을 받고 있다. 또 장녀의 이중국적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도 조만간 열린다. 이들이 국회 검증의 벽을 무난히 넘어선 뒤 국정 현장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철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