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역사도 기록도 기억도...믿을 수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 '불확정성의 원리' 10월9일까지

왈리드 라드 등 다른 문화권의 실험적 작가 4人

세계의 불확정과 그 이면에 관한 이야기 담아

왈라드 라드 ‘아홉 번째 판에 부치는 서문’의 세부.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왈라드 라드 ‘아홉 번째 판에 부치는 서문’의 세부.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1901~1976)가 제안한 ‘불확정성의 원리’는 확실한 것만을 다루던 물리학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하나를 측정하는 동안 다른 하나가 변화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이 양자물리학의 대표 이론이 미술관을 파고들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4일 개막한 기획전 ‘불확정성의 원리’는 각자 다른 문화권을 배경으로 한 4명의 예술가가 예민함으로 감지한 세계의 불확실성과 그 이면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벽면 가득 걸린 왈리드 라드(50)의 ‘아홉 번째 판에 부치는 서문’ 그림들은 하나같이 캔버스의 뒷면이다. 대체로 인물화인데 암울한 분위기가 감돈다. 레바논 태생의 작가 라드는 아랍권 국가의 인권을 주제로 초상화를 그려온 화가 마완 카삽바치(1934~2016)의 그림을 골라 베끼듯 캔버스 뒤에 따라 그렸다. 작가는 자신의 고국뿐 아니라 리비아·이집트·예멘·터키 등 무력 전쟁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아랍권 국가에 박물관과 미술관 건축 붐이 일고, 아랍계 작가들이 주목받는 상황에 주목했다. 엄연히 앞면을 내보여야 할 그림을 뒷면에 그려 놓음으로써 누가 예술의 위상을 결정하는지, 무엇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이 작가는 레바논 내전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역사를 뒤섞어 보여준 ‘아틀라스 그룹’ 활동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호 추 니엔 ‘더 네임’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호 추 니엔 ‘더 네임’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7권의 책과 영상작품으로 이뤄진 싱가포르 출신 호 추 니엔(41)의 작품 ‘더 네임(The Name)’은 알고 있는 지식과 판단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책들의 저자 ‘진 Z.한라한’이라는 인물은 말레이 공산당의 역사에 대한 최초의 글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책은 한 사람의 저작물이라기보다 여러 사람이 쓴 듯한 인상을 풍긴다는 데서 출발한 작품이다. 작가 니엔은 한라한의 저서와 학술적 글을 수집해 영상작품의 재료를 마련했다. 영화에서 차용한 글 쓰는 사람의 모습과 한라한의 글을 낭독하는 낭랑한 성우들의 목소리는 ‘유령작가’라 의심받은 인물에게 ‘생생함’을 부여한다. 작가는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싱가포르관 단독 작가로 선정됐다.

재커리 폼왈트 ‘파노라마와 법인의 탄생’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재커리 폼왈트 ‘파노라마와 법인의 탄생’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미국 출신의 재커리 폼왈트(38)는 사진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1830~1904)가 1978년에 완성한 파노라마 기법의 샌프란시스코 풍경사진이 한 기업 임원의 집에서 제작됐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 기업 임원은 훗날 세계 최초로 미국에서 기업이 ‘법인’이라는 인간과 유사한 법적 지위를 갖게 되는데 기여했다. 이에 작가는 사진술에 대한 총체적 접근으로 탄생한 파노라마 풍경사진과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형성과정을 연결시켰다. 숨겨진 이야기들이 상징적으로 표현돼 곱씹는 맛이 있다.

권하윤 ‘새(鳥) 여인’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권하윤 ‘새(鳥) 여인’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한국 출신으로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며 작업하는 권하윤(36)은 프랑스에 사는 한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에 대한 작은 기억을 가상현실(VR) 기술로 구현했다. 3D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재구성된 노인의 주관적 기억 속에서 관객은 움직임에 따라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 개인 혹은 집단의 기억이 정확히 사실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역사와 기록 또한 정확하다고 맹신할 수는 없는 것임을 일깨운다. 10월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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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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