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그동안 ‘무늬만 정규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텔러’ 등 저임금 직군을 일반 직군으로 전환하려는 것은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부응하기 위한 차원이다. 또 직원 간 차별을 해소해 조직 내부의 단합을 도모하고 전체적인 업무 부담을 완화하자는 계산도 깔려 있다.
23일 시중은행에 따르면 우리은행 정도만 텔러 직군의 임금이 일반 직군의 80% 정도로 현실화돼 있고 나머지 은행들은 일반 직군의 60~7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조직 내부에서 잠재적인 갈등 요인으로 자리해왔다. 최근에는 텔러 직군의 희망퇴직이 확대되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일손이 줄어들어 은행 내부 직원들의 업무 부담 가중을 호소하는 하소연이 커지는 등 처우에 대한 불만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실제로 올해 초 KB국민은행에서 희망퇴직한 2,800여명 중 1,000여명이 텔러 직군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저임금 직군을 내부 절차를 통해 일반 직군으로 전환해 정부정책에 부응하는 동시에 저임금 직군에도 다양한 영역의 업무를 분산해 전체적인 업무 부담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EB하나은행의 경우 연간 100여명을 상위 직군으로 승진시키고 있고 KB국민은행도 연간 100명씩 ‘레벨0(L0)’에서 ‘레벨1(L1)’로 승진시키고 있지만 이를 더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은 과거부터 일반직 직군 전환을 여러 차례 해왔으며 현재는 내부승진 체계를 통해 일부 직군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우리은행은 연간 300명이 일반 직군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재는 일반직은 일반직대로 일이 많다고, 저임금직은 저임금직대로 임금이 적다고 불만이 고조된 상황”이라며 “저임금직은 기본적으로 은행 업무에 능숙한 상태이며 업무 의지가 높은 사람들도 있기에 새로 사람을 뽑는 것보다 업무를 배분하기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이 저임금 직군의 임금을 일반 직군 수준으로 대폭 올려주기보다 일반 직군으로 전환 폭을 확대하는 카드를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노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데다 어떤 기준을 갖고 일반 직군으로 전환할지 등에 대한 세부적인 기준이 없어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텔러로 들어온 직원들을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대졸 공채 일반 직원들과 동등한 직군으로 전환하는 것이 오히려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저임금 직군의 일반 직군 전환을 위해서는 내부의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일반 직군 전환은 ‘로또’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또 다른 노노 갈등을 예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일반 직군으로 전환할 경우 장기적으로 은행 수익성에는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규직 공채 임금의 최저 60% 수준을 받고 있는 저임금 직군 인력이 최대 1만명 이상 일반 직군으로 전환되면 급여 인상은 물론 각종 비용 등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 정부의 금융정책 방향이 서민금융에 집중되면서 은행의 수익성과 배치되는 정책 도입이 활발해질 가능성이 큰 상황인데 고임금의 일반직 전환에 따른 부담을 시중은행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저임금 직군의 임금 정상화 등은 큰 틀에서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정부도 인력부터 수수료까지 하나하나를 규제 대상으로 보고 이를 옥죄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보리·조권형기자 bori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