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수천 장의 멋진 사진을 찍어 과학 발전에 크게 공헌한 카시니 탐사선은 이제 퇴역 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인간과는 달리 은퇴 후 바닷가에서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길 일은 없다. 카시니는 영광의 불길 속에 휩싸여 사
라질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토성의 대기 속으로 뛰어들어 대기 마찰열로 전소될 것이다. 카시니의 마지막 항해는 지난 4월 23일 시작되었다. 아직 누구도 가 보지 않은 토성 본체와 고리 사이의 공간을 앞으로 22바퀴 궤도비행하고 나면 올 9월 15일 토성 대기 최상층부에 뛰어들어 카시니는 소멸될 것이다. 그러나 9월 15일까지는 카시니는 계속 사진과 데이터를 전송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새로운 것들을 여러 가지 발견해 낼 것이다. 하지만 임무 종료를 앞둔 시점에서 이 우주선이 그 동안 거두었던 큰 실적들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5. 이아페투스의 신비를 풀다
토성 위성 이아페투스는 무려 17세기부터 천문학자들을 괴롭혀 왔다. 때때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천문학자들은 이아페투스가 한쪽 면은 새까맣고, 다른 한쪽 면은 새하얗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설가 아더 C. 클라크는 그 기묘함에 매료되어 자신의 소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이아페투스의 어두운 면에 외계인의 기념비를 세웠다.
이아페투스로부터 1,600km 이내로 접근한 카시니는 이아페투스가 이렇게 보이는 이유를 알아내었다. 이아페투스는 토성과 조석고정된 상태다. 즉, 토성에서 본 이아페투스는 언제나 같은 면만 보인다는 얘기다. 또한 언제나 같은 면이 토성 바깥쪽을 보고 있게 된다. 그러면 마치 자동차 유리창에 벌레가 들러붙듯이, 토성의 고리와 다른 위성에서 나온 잔해들이 그 바깥 쪽에 들러붙어 시커멓게 변색시킨다. 색이 시커매지면 열을 잘 흡수하므로, 그 쪽의 얼음은 계속 승화되어 밝은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밝은 쪽에는 얼음이 계속 모여 더욱 더 밝아지게 된다.
4. 새로운 토성 위성 발견
토성의 위성은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50개가 넘는다. 그리고 아직 발견되지 않았거나 위성으로 확인되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이 중에는 카시니가 발견한 것도 있다. ‘안테’, 소위성 ‘아이가이온’, 토성 고리를 가로지르는 사랑스런 ‘다프니스’, 계란 모양의 ‘메토네’, ‘팔레네’, ‘폴리데우케스’ 등이 그것이다. 카시니는 스펀지처럼 생긴 ‘히페리온’, 만두처럼 생긴 ‘아틀라스’ 등 토성의 다른 위성들도 근접 촬영했다.
3. 티탄은 지구와 꽤 닮았다.
토성의 가장 큰 위성인 티탄. 그러나 2005년 카시니가 호이겐스 탐사선을 보내기 전까지는 그저 안개에 싸인 천체일 뿐이었다. 티탄의 표면에 착륙한 호이겐스 탐사선은 티탄의 환경이 의외로 지구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것을 알아냈다. 티탄에는 강도 있고 호수도 있었다. 다만 물이 아니라 액체탄화수소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카시니 프로젝트 과학자인 린다 스필커는, 이 임무에서 티탄 탐사를 매우 좋아했다고 밝혔다. “티탄이 지구와 닮은 곳임을 알았을 때 얼마나 흥분되던지! 티탄에는 메탄으로 이루어진 강과 호수, 바다가 있었다. 그리고 지구에서 물을 순환시키는 것처럼 티탄에서도 메탄을 순환시키고 있었다. 티탄에는 메탄으로 이루어진 구름이 메탄 비를 내려 메탄 호수를 채우고 있었다.”
아직 우주에서 지구와 완전히 똑같은 곳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두터운 대기와 활발한 표면을 지닌 티탄을 우리 태양계에서 생명이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보고 있다. 어쩌면 우주에는 물 대신 메탄에 기반한, 지극히 외계적인 생명체도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2. 간헐천과 바다를 지닌 엔켈라두스
카시니 이전, 과학자들은 이 작고 소박한 위성 엔켈라두스를 얼음 덩어리로 생각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카시니의 자력계에 뭔가 이상한 것이 읽히는 것을 보고 카시니를 엔켈라두스 가까이로 보내 보았다. 그리고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엔켈라두스의 남극에서 간헐천이 물 결정을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엔켈라두스의 얼음 껍질 아래에 깊은 바다가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물이 있다면, 우리가 아는 형태의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
카시니에는 생명체 탐사 기능이 없다. 그러나 임무 과학자들이 카시니의 탐지 장비를 조작해 간헐천에서 나오는 물의 성분을 분석, 엔켈라두스 지하 바다가 생명체 거주 가능한 상태인지를 알 수는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그런 것으로 보인다.
카시니가 간헐천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용물에 깊이 접촉해 본 결과, 수증기 속에 수소 가스가 들어 있음이 밝혀졌다. 이 수소 가스는 엔켈라두스 해저의 활성 열수공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리고 지구에는 이산화탄소와 수소를 결합해 섭취하는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
카시니는 엔켈라두스에 물과 식량, 열기가 있음을 알려 주었다. 그렇다면 엔켈라두스는 우리가 아는 형태의 생명체가 존재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거의 모두 갖고 있는 셈이다.
1. 어디에나 생명체는 있을 수 있다.
토성은 태양계의 거주 가능 구역에 있지 않다. 거주 가능 구역이란 항성으로부터 너무 멀리도 너무 가까이도 있지 않아 행성 표면에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 생명체의 생존이 가능한 곳을 말한다. 그런데도 티탄과 엔켈라두스는 우리 태양계에서 외계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목성의 위성 에우로파 역시 지하에 바다가 있을 수 있다. 그것까지 감안해 본다면 카시니의 발견을 통해, 골디락스 구역(거주 가능 구역의 또다른 이름) 같은 것은 없으며, 생명체는 어디에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필커는 말한다. “지금 패러다임의 전환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 태양계는 물론 다른 태양계에서 생명을 찾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공간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인 것이다. 우리 태양계 내에도 지구와는 전혀 상관없이 스스로 생명을 길러낼 수 있는 바다가 여러 개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럼으로서 우리의 사고는 크게 바뀌게 될 것이다.”
다음에는 무엇이?
카시니는 4월 26일, 토성 본체와 고리 사이의 공간에 처음으로 들어갔다. 토성 고리 중 가장 안쪽에 있는 입자에 카시니가 잘못 부딪치지만 않는다면, 9월까지 계속 새로운 영역을 탐사할 것이다. 그러면서 토성의 내부, 중력, 자장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보내올 가능성이 있다. 물론 토성의 아름다운 모습도 보내올 것이다.
스필커에 따르면, 9월 12일 티탄은 카시니에게 ‘작별 인사’를 보낼 것이라고 한다. 티탄의 중력으로 인해 카시니는 토성 대기권으로 빨려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카시니는 파괴될 것이다. 카시니의 파괴는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우선 연료가 고갈되었는데다가, NASA는 혹시 카시니의 선체에 붙어 있을지도 모르는 지구 미생물이 티탄과 엔켈라두스를 오염시키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필커의 말이다. “카시니는 장엄한 최후를 맞을 것이다. 토성 위성의 해양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지구로 데이터를 보내오며 선구자적인 사명을 다할 것이다.”
현재 예정된 다음 토성 탐사 임무는 없다. 그러나 NASA의 뉴 프론티어 프로그램은 티탄과 엔켈라두스의 재탐사를 고려하고 있다.
스필커 역시 엔켈라두스의 배출물 속으로 우주선을 통과시켜 그 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생명의 흔적을 찾는 임무 기획안을 가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카시니가 보내 온 데이터를 앞으로 수년 간 분석할 것이다. 그 속에서 귀중한 발견이 또 나오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카시니의 남은 수명 동안에도 또다른 발견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스필커의 말이다. “카시니의 영광스러운 임무는 아직 22주가 남아있다. 그 기간 동안 이 임무에서 가장 흥미로운 발견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새로운 곳에 갈 때는 무엇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이제까지 이 임무에서는 무엇을 상상하건 상상한 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들이 나왔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 / by Sarah Fec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