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초대형 투자은행(IB)’이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어요.”
초대형 IB 인가 신청을 앞두고 한창 준비중인 증권사 관계자는 의외의 말을 했다. ‘초대형’이라는 말이 ‘재벌 증권사’라는 이미지를 연상시킨다며 최근 곱지 않은 시선을 이곳저곳에서 받고 있기 때문이다. 초대형 IB의 요건이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인 만큼 대형 증권사에 유리한 것은 맞다. 따라서 서민과는 무관한 또 다른 대형 금융사의 탄생 정도로 인식된다는 의미다.
엄살로만 느껴지지 않은 이유가 있다. 기업 자금조달 경로를 다양화한다는 취지의 초대형 IB는 예상 밖의 난관에 부딪쳤다. 신청 유력사 대다수가 과거 제재 이력과 대주주 적격성 문제라는 탈락 ‘위험 요소’를 안고 있어서다. 금융당국의 의지에 따라 심사대가 ‘바늘 구멍’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업계에선 이미 이렇게 보는 분위기다. ‘결격 사유가 하나라도 있으면 단기금융업무(기업금융) 인가를 못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고 한다. 금융감독원이 기업금융 관련 시행 세칙을 마지막으로 가다듬는 동안 신청 후보들이 ‘눈치 작전’을 벌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당국의 정확한 입장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재벌 이미지까지 덧씌워진다면 게임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새 정부의 기조인 개혁과 반대되는 인상을 줄 여지도 있다. 대대적인 육성책을 발표하고 최근 자본시장법 개정 시행령까지 마련했어도 ‘대세’를 뒤집기 힘들 수 있다는 말이다.
후보사들은 상황이 이럴수록 제도의 원래 취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기업금융 경로를 다양화해 벤처 중소기업에 모험자본을 공급하면 창업 활성화에 큰 도움”이라고 말했다. 초대형 IB가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취지에서 초대형 IB 육성 정책이 나왔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상황 논리에 흔들리는 일관성 없는 정책이야말로 ‘적폐’가 아닐까요.” /증권부=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