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전각과 도장으로 작업해 ‘인장회화’ 혹은 ‘도장그림’이라는 독특한 화풍을 이룬 이관우(48·사진)의 개인전이 현대미술의 심장부 뉴욕에서 열린다.
뉴욕 첼시에 위치한 에이블파인아트갤러리는 오는 6월1일부터 15일까지 한국의 중진 미술가 이관우의 개인전을 연다고 28일 밝혔다. 앞서 지난 2011년에 이어 뉴욕 개인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이관우 작가는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1999년부터 물감 같은 일반적인 안료 대신 도장으로 작업한다. “살던 사람들이 이사 가고 폐허처럼 남겨진 집에서 발견된 도장들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곤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도장이 생명력과 직결된 ‘존재의 흔적’으로 보였던 것 같아요. 도장을 통해 사람의 이름은 법적·사회적 권리를 드러낼 뿐 아니라 그 이름의 흔적이 영원성을 갖게 되죠.”
쓰다 버려진 도장의 모양은 사각형·원형·타원형 등 제각각이다. 작가는 이것들을 모아 부처나 할아버지의 얼굴 등 구상화를 그릴 뿐 아니라 명상적인 추상화까지 이뤄낸다. 낱낱의 도장은 각각 이름을 나타내는 작은 그림이지만 그것들이 모여 구성된 화면은 마치 개인이 모여 만든 새로운 사회처럼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도장이라는 재료에 각각의 개인사가 서려 있으니 수백, 수천 개의 도장으로 만든 풍경은 역사의 풍경이 되고, 인물화는 시대의 초상으로 읽힌다.
그의 작품은 도장과 전각이라는 동양적 소재의 참신성 때문에 굵직한 해외 아트페어를 통해 국내보다 외국 컬렉터에게 먼저 호평받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인 ‘단색화’처럼 구도자 같은 반복행위의 수행적·명상적 분위기 또한 이관우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게 했다.
작품에 대해 작가는 “워낙 많은 전각들을 사용하다 보니 그림은 우연 속에서 만들어지고, 설사 의도한다 하더라도 의도치 않은 결과물이 탄생하곤 한다”면서 “이같은 작품을 통해 사회적인 관계성, 이름으로 기억되는 영원성을 얘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뉴욕에서 개막한 ‘아트엑스포 뉴욕’에서는 이관우의 150호(2m 이상 크기) 대작이 새 컬렉터의 품에 안겼다. 뉴욕 현지에서 금융회사 부사장으로 일하는 미국인이었다. 한국과의 인연이나 이관우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도 없는 순수한 애호가였기에 작가는 더욱 기뻤다. 32년 전통의 ‘아트엑스포 뉴욕’은 500개 이상의 화랑이 참여하는 대규모 아트페어로 이 작가가 처음 출품한 3점 모두 현지 컬렉터에게 팔리는 쾌거를 이뤘다.
뉴욕에서 처음 시작한 에이블파인아트는 이관우 등 한국 작가와의 인연을 계기로 서울지사도 열었다. 갤러리 측 관계자는 “이관우의 작품은 동양적인 신비감으로 일단 눈길을 끌지만 현대적인 미감도 겸비해 동양 사상과 철학을 초월해 주목받는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