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비정규직 해결 방식 10가지 문제점-2]⑥ 의욕앞선 대통령 일방통행 지시...관료·기업 복지부동 부를수도

대통령 한마디는 엄청난 압박

실무자 통해 세심하게 접근을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인총연합회 부회장의 말을 하루 만에 정면 비판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많다.

지난 26일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포럼 축사에서 “대기업 정규직 과보호에 대한 해결 없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가 넘쳐나면 산업현장의 갈등이 심화하고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으로 삼는 국정 방향과 배치된다”고 밝혔다. 이에 문 대통령은 하루 만에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경총은 비정규직으로 인한 양극화를 만든 것에 대해 반성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곧장 경총은 “원론적인 발언이었다”며 바짝 엎드렸다.


익명을 요구한 싱크탱크의 한 고위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이견을 내는 것은 의무’라고 했는데 곧바로 다른 의견을 찍어내렸다”며 “군대식의 거친 접근법”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대통령의 한마디는 이해당사자들에게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온다”며 “물론 1호 공약이긴 하지만 실무자를 통하는 등 세심하게 접근해야 했다”고 평가했다.

이 밖에도 경총 회장도 아닌 부회장 발언을 대통령이 반박한 것은 ‘체급’도 맞지 않으며 앞으로 수많은 기득권층의 반발이 나올 때마다 대통령이 일일이 논평할 것이냐는 의문도 나온다. 실제 최근 자유한국당은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의 조건으로 문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인사 발표를 대통령이 직접 하는 상황에서 인사원칙을 훼손했으니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해를 구하라는 것이다. 주요 사안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대통령이 일일이 직접 전면에 나서다 보니 퇴로가 막힌다. 이런 식이라면 갈등이나 이슈가 있을 때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해 국정에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관료사회와 민간기업의 복지부동을 불어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자칫 국정철학에 위배되는 의견을 밝혔다가는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직접적인 공박을 받을 수 있는 탓이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정부정책의 왜곡을 낳을 수 있다는 조언도 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⑦ 사업특성 고려 않는 일괄적 정규직화

한수원 파견 한전KPS 직원

정규직·비정규직 구분 모호

발전소의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한전KPS의 3,000명이 넘는 직원들은 한국수력원자력에 사내 하도급 인력으로 파견을 나가 있다. 이들은 정규직일까, 비정규직일까. 정답은 ‘둘 다’다. 정규직으로 채용한 한전KPS 입장에서는 ‘정규직’이지만 이들을 사내하도급 인력으로 활용하고 있는 한수원 입장에서는 ‘비정규직’으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Zero)화’ 정책을 토대로 본다면 한수원에 파견 나온 한전KPS 직원들은 한수원의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 한수원과 같은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전KPS 직원들이 사업 특성상 파견 형태로 근무하는 것일 뿐인데 이들의 소속을 바꾸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수원은 그래도 정부 정책 기조에 맞춰 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 실무적인 검토 작업에 들어간 상황이다. 한전KPS 직원들은 1인당 평균 보수가 7,417만원 수준이고 고용 보장도 받고 있다.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생각하는 비정규직에는 용역과 파견·사내하도급 직원들까지 포함돼 있는데 일부 기업들은 사업의 특성상 파견 형태인 경우가 있다”며 “일괄적으로 정규직화를 하려다 보니 실무에서는 혼선을 겪는 게 사실이고 차라리 정부의 지침이 빨리 나와 그것을 따라가는 게 낫다는 얘기가 많다”고 말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⑧ 광물자원公 등 적자社도 무리하게 추진

공기업 2/3가 적자 운영

재무 상태 악화 불보듯


저유가와 해외자원개발 후유증, 경영 실패 등으로 수년째 영업적자를 보고 있는 광물자원공사는 이번 정부 들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광물자원공사는 경영 악화로 비핵심자산을 적극적으로 매각하고 사옥 공간의 일부를 외부에 임대하는 한편 지난 2015년 이후로 신규 채용도 중단했다. 새로운 직원을 뽑지도 못할 정도로 경영 상황이 악화된 기업이 새 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추기 위해 사내 비정규직 인력과 외부 용역인력을 정규직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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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전국 공기업 중 무려 3분의2에 해당하는 곳이 적자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규직 전환에 따른 인건비 상승을 감당할 수 없는 공기업들의 추가적인 재무상태 악화와 이에 따른 재원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적자 공기업들은 경기 악화 탓에 경영여건이 여의치 않은데다 공공성을 이유로 민간에서 하지 않으려는 사업들도 떠맡아 하는 상황이라 세금으로 빈틈을 메워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개별 공기업의 경영 상황에 대한 정교한 분석 없이 일괄적으로 정규직 전환이 추진되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일부 정부부처들은 공공기관 예산과 정원을 결정하는 기획재정부의 결정만 쳐다보고 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공공기관마다 경영 상황이 다 달라 정원 확보나 예산지원이 필요해 기획재정부의 지침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⑨ 파트타임 원한 직원도 정규직해야 하나

어린 아이 키우는 직장맘은

부담적은 저임금 직군 원해

개별 기업의 업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규직화는 오히려 혼란과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마다, 직원마다 처한 환경에 따라 찬반 입장이 제각각이어서다.

시중은행의 경우 1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일반직이 있는가 하면 창구 텔러 등 특수한 업무에 한정된 저임금 직군도 존재한다. 저임금 직군은 일반직에 비해 임금과 인사 등에 불이익을 받지만 오히려 정규직 전환이 달갑지 않다. A은행 노조 관계자는 “아이를 키우는 직장맘들은 월급을 덜 받더라도 정시 퇴근과 업무 부담이 적은 저임금 직군에 속해 있기를 원한다”며 “직원 100% 모두 일반직(정규직) 전환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더구나 비정규직 중에는 변호사나 펀드매니저 등 고액 전문직이 많은데 이들을 모두 정규직화한다는 것은 난센스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치킨·햄버거 등 외식 프랜차이즈와 편의점 업체의 경우 가맹점 비정규직 문제를 전부 본사 부담으로 떠넘길 경우 통제 범위가 너무 커진다는 점이 문제다. 반면 고작 1~2명의 직원을 고용하는 가맹점주까지 직원 정규직화를 강요할 경우 자영업을 되레 어렵게 할 수도 있다. 유통 업계의 경우 설이나 추석처럼 명절 대목에는 일손이 모자라 단기근로자를 채용하는데 특정 기간에만 필요하다 보니 비정규직으로 채용할 수밖에 없다. 정부 정책에 따라 무조건적인 정규직 전환이 된다면 일손은 필요한데 무작정 채용하는 것도 어렵다는 불만이 나온다.

비정규직의 일반직 전환에 따라 승진경쟁이나 임금 동결 등에 따른 노노갈등 조짐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기아자동차 노조는 비정규직을 배제하는 안건을 조합원 72%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따른 고통분담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기아차처럼 갈등이 겉으로 표출되지는 않고 있지만 무기계약직 3,0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B은행의 경우 일반직 직원들의 승진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고 임금 동결 등에 대해 노조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2007년 우리은행의 경우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정규직 임금을 동결했고 국민은행은 2014년 계약직 4,2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기존 정규직의 연월차수당을 줄여 고통을 분담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⑩ 섣부른 해결...왜곡된 결과

SKB 사내하청 직접 고용

사업체 잃은 하청사 반발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서면서 공공기관은 물론 일부 대기업들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작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행태를 보면 현실적인 범위 내에서 정권의 코드에 맞추는 생색내기에 가깝다. SK브로드밴드 사례가 대표적이다. SK브로드밴드는 자회사를 설립해 애프터서비스(AS) 업무를 맡고 있는 사내 하청업체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멀쩡한 사업체를 접게 된 기존 하청업체 대표들이 반발했다. 최근 이형희 SK브로드밴드 사장이 하청업체 대표 9명과 간담회를 열고 적정 수준의 위로금을 제공하는 등의 유인을 제시했지만 최종 합의가 원만하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SK브로드밴드뿐 아니라 상당수 기업들이 자회사를 만들고 비정규직을 일단 정규직화한 뒤 상황을 봐가면서 자회사를 청산하는 식의 ‘꼼수’를 부릴 개연성이 농후하다. 비정규직 문제를 섣부르게 접근할 경우 당초 취지와 달리 왜곡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정부가 밀어붙일 경우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를 시장으로 경쟁하는 대기업들일수록 가능성이 더 크다. 미국의 애플은 폭스콘을 비롯해 생산 자체를 외주화하고 있고, 구글 역시 콜센터를 인도에 두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건설 업종의 경우 오히려 정규직 부담이 기업의 존폐 기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업황 사이클이 뚜렷한 상황에서 모든 협력업체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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