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개발한 인공지능(AI) 알파고가 바둑 세계 챔피언 커제 9단을 꺾으며 ‘인간의 수’를 넘어섰다. 이번 대국을 끝으로 바둑 은퇴를 선언한 알파고는 신약 개발이나 자연과학 연구 등 사람의 두뇌에 의존하던 지식 영역으로의 새로운 항해에 나선다.
지난 23일부터 27일까지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열린 ‘바둑의 미래 서밋’에서 세계 바둑 행킹 1위 커제 9단과의 대국을 3대 0 완승으로 마무리한 알파고는 바둑계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알파고 개발사인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는 27일 폐막 기자회견에서 “커제 9단과의 대국은 인공지능의 최고 수준을 체현함으로써 인류가 인공지능을 도구로 삼을 수 있다는 잠재력을 확인한 것”이라며 “앞으로 인공지능은 인류가 새로운 지식영역을 개척하고 진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알파고를 바둑에 특화된 인공지능이 아닌 과학·의학 등 범용 인공지능으로 확대·진화시키겠다는 의미다.
알파고가 도전할 다음 과제는 희귀난치병의 새로운 치료법 개발이나 에너지 소비 감축, 혁신적인 소재 개발 등 과거에 수많은 고급 인력을 투입해야 가능했던 분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허사비스 CEO는 “새로운 치료법을 찾거나, 에너지 소비를 현저히 줄이거나, 새로운 혁신적인 소재를 발명하는 등 과학자들이 세계의 가장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돕기 위한 알고리즘 개발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구글은 이미 자사 데이터센터에 알파고의 알고리즘을 적용해 냉난방을 제어함으로써 에너지 40%를 절약하고 있다. 또 영국의 국민건강보험공단(NHS)과 손잡고 AI로 환자의 치료와 진단 속도를 단축하는 기술도 시험 중이다.
인간과 AI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을지도 이번 대국이 남긴 중요한 과제다. 26일 부대행사로 진행된 알파고와 인간바둑 기사의 2대2 페어대국은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초반에 우세했던 ‘구리 9단·알파고’ 팀은 이후 찰떡궁합을 보인 ‘란샤오 8단·알파고’팀에게 패했다. 뜻깊은 승리를 거둔 란샤오 8단은 “알파고가 바둑에 불어넣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통해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경기를 해설한 김성용 9단도 “이 경기는 의사들이 왓슨(의료 AI)의 처방전 제안을 수용하며 함께 더 나은 결과를 얻는 것처럼 바둑에서도 인간 기사와 AI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