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등의 위장전입 논란에 대해 야권과의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문 대통령의 직접적인 사과 표명을 원하는 야권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양해를 바란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지만 인수위 과정의 부재, 탕평인사 등의 배경을 언급하면서 여론전을 펴겠다는 의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인사 난맥상 돌파 카드로 꺼낸 것은 공직 임명을 위한 위장전입 배제 기준을 야권에 선(先)제안한 것이다.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날 오전 국회를 찾아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를 만나 “국회 인사청문 제도가 도입된 지난 2005년 7월 이후 위장전입 관련자는 앞으로 국무위원 후보자에서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2005년 7월은 인사청문회 제도가 국무위원 후보자 전원으로 확대된 시점이다. 아울러 2005년 이전이라도 부동산투기성 위장전입자는 후보 지명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전략은 높은 국정 지지도를 바탕으로 집권 초기 야당과의 주도권 다툼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물론 전병헌 수석, 한병도 정무비서관을 통해 ‘로키(low key)’ 기조로 협조를 당부했지만 구체적인 위장전입 인사 기준을 역으로 제시하면서 국정 공백을 메울 총리 임명의 공을 야권에 넘기겠다는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이 후보자가 위장전입 논란을 제외하면 자격에 큰 흠이 없다는 청와대 내부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했다. 이 후보자는 청와대가 밝혔던 2005년 7월 기준을 야권이 받아들인다면 청문회 통과 가능성이 높다. 이 후보자의 위장전입 논란이 불거진 시점이 1989년이기 때문이다. 단 이와 관련해 자유한국당 등 야당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국민 여론이나 야권의 의견을 묻지 않고 자체적인 기준을 마련했다”며 “이는 스스로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해 오히려 논란을 더 키웠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와 야권이 이 후보자 인준안을 처리하는 대신 강경화 장관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빅딜’에 합의한 것 아니냐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특히 한국당에서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이 후보자에 대한 성토가 잦아든 반면 강 후보자에게는 거센 비판이 이어졌다.
정우택 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지명 철회가 필요한) 여러 분이 있지만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만 말씀드리겠다”면서 강 후보자 관련 ‘의혹’을 상세히 언급했다.
인선 문제에 대한 문 대통령의 정면돌파 의지는 곳곳의 발언에서 확인된다.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구체안 마련이 결코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거나 후퇴시키겠다는 게 아니다”라며 “공약을 지키기 위해 당연히 밟아야 할 준비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취임 첫날 곧바로 총리 후보자를 지명했는데 그것은 최대한 빠르게 내각을 구성해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과 함께 인사탕평을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 후보자가 호남 출신임을 강조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당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이 사과 대신 양해라는 표현을 쓴 것도 부동산투기 목적이 아닌 이 후보자의 위장전입을 야권이 과도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밖에도 이날 회의에서는 △국민인수위 운영상황 △정상 해외순방 행사 계획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임용 시스템 개편안 △국정운영 기조 및 100일 로드맵과 정책과제에 대한 보고도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