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빛으로 꽃을 살린 사진작가와 물로 꽃을 피워낸 화가가 있다. 사진 찍는 구성수(47)와 동양화를 전공한 이정은(46)이다. 이화익갤러리에서 2인전을 열고 있는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꽃’이라는 소재다.
구성수 작가는 찰흙 위에 야생화를 곱게 눕힌 다음 고무판으로 눌러 음각 틀을 만들고 그 위에 다시 석고시멘트를 부어 볼록한 부조를 만든다. 무채색의 꽃 형태 위에 작가는 색을 칠하고 사진을 찍는다. 꽃 틀을 만들고 채색하기까지는 “단순하고 쉬운 과정”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촬영 과정에서 빛을 조절해 꽃 색의 변주를, 화사한 생명력을, 나아가 그림자와 바람의 움직임까지 담아낸다. 그가 ‘포토제닉 드로잉’이라 이름붙인 꽃 사진 연작은 이처럼 조각·회화·사진의 과정을 두루 거치면서 쉽게 찍는 사진을 특별한 예술로 끌어 올린다. 꽃의 형태를 배치하는 탁월한 조형미와 식물도감을 보는 듯 뿌리와 꽃잎의 결까지 살려낸 세밀한 표현이 작품 감상의 재미를 더한다.
이정은은 어머니인 한국화가 노숙자(74) 화백의 정성스런 작업 과정을 어려서부터 보며 자라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가 되기까지 오로지 그림과 함께 한 일생이었다. 그렇게 다진 삶의 태도가 작품에 짙게 배어있다. 장지 위에 아교와 밑색 물감을 섞어 얇게 칠하기를 수십 번 거듭해야 물로 색을 조절하는 게 가능해진다. 동양화의 오묘한 색감은 이슬만큼 맑고 땀처럼 진한 그 물의 농도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먹으로 섬세하게 스케치 한 후 원하는 만큼의 진한 색이 나오기까지 끈기있게, 색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칠을 반복한다. 그렇게 피워낸 꽃도 아름답지만 박물관 소장품과 도록으로 고증해 그린 화병 또한 명품이다. 그가 그린 현대적 책가도에는 예술과 인문학 서적이 가득하다.
꽃을 따라 들어섰다가 작가들의 노고가 빚은 향기에 취해 나오게 되는 전시다. 기획자인 이화익 대표는 “기존의 작업 영역을 뛰어넘어 끊임없이 도전하고 감각적인 구성수의 작업과 가장 전통적인 것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성실하게 만드는 이정은의 조합은 기본에 충실하면서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라는 점을 공통분모로 꼽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6월13일까지.